아들 낳자마자 출가한 붓다와, 모친에 돌 던진 성철의 절박함

  • 카드 발행 일시2024.03.06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여기는 우리에게 “삶은 자유의 바다”라고 역설하는 붓다의 생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붓다뎐’을 연재합니다. ‘종교’가 아니라 ‘인간’을 다룹니다. 그래서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지지고 볶는 일상의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붓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돼라”고 말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돼라”고 합니다. 어떡하면 사자가 될 수 있을까. ‘붓다뎐’은 그 길을 담고자 합니다.
20년 가까이 종교 분야를 파고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예수를 만나다』『결국, 잘 흘러갈 겁니다』등 10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붓다는 왜 마음의 혁명가일까, 그 이유를 만나보시죠.

⑧싯다르타, 아들 낳고 1주일 만에 출가

붓다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가족이다. 붓다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아들도 하나 있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모질게 출가한 사람이 붓다다. 물론 나중에는 붓다의 아내도, 붓다의 아들도 출가해 아라한의 자리에 오른다. 싯다르타의 결혼과 득남, 그리고 출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 싯다르타’가 보인다. 우리가 하는 똑같은 고뇌와 번민을, 2500년 전 싯다르타도 똑같이 했다.

#싯다르타의 배필은 고모의 딸

싯다르타가 19세가 될 때였다. 숫도다나 왕은 왕자의 배필을 정하기로 했다. 왕자가 출가의 뜻을 밝힌 적이 있기에, 왕은 예방 차원에서 서둘러 왕자비를 볼 참이었다. 사카족의 장로 회의 끝에 후보자가 정해졌고, 싯다르타는 직접 가락지를 건네며 야소다라를 배필로 맞았다.

인도 중부의 산치 대탑에 있는 불교 조각상. 아소카 왕 때 조성된 산치 대탑에는 인도 불교의 산 역사가 녹아 있다. 백성호 기자

인도 중부의 산치 대탑에 있는 불교 조각상. 아소카 왕 때 조성된 산치 대탑에는 인도 불교의 산 역사가 녹아 있다. 백성호 기자

경전에는 “야소다라는 아름답고 단정한 외모에, 키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몸매가 뚱뚱하지도 야위지도 않고, 피부가 검지도 희지도 않다”고 기록돼 있다. 불교 학자들은 싯다르타에게 적어도 세 명의 아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 인도의 씨족 국가에서 왕자가 아내를 여럿 두는 건 흔한 일이었다. 싯다르타의 아내들 중에서 자식을 낳은 이는 야소다라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야소다라는 남이 아니었다. 고모의 딸이었다. 숫도다나 왕에게는 아미타라는 누이가 있었다. 아미타는 이웃 나라인 꼴리야족에게 시집을 갔다. 그리고 딸을 낳았다. 아미타의 딸 이름이 야소다라다. 당시 씨족 연맹체였던 카필라 왕국에서 친척 간 결혼은 흔한 일이었다.

결혼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꼴리야족은 문무를 겸비한 사위를 원했다. 혹시라도 왕궁에서 안전하게만 살아온 ‘샌님’이 아닌지 염려한 것일까. 배필을 뽑기 위해 꼴리야족은 시험을 치렀다. 그중 하나가 활쏘기 시합이었다. 500명의 청년이 이 시합에 참가했다고 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기록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싯다르타 왕자의 활쏘기 실력이다.

싯다르타의 할아버지는 시하하누다. 무예에 능했다. 생전에 그가 썼던 활이 있었는데, 사당에만 보관돼 있었다. 활이 너무 무겁고 강해서 아무도 시위를 당길 수가 없었다. 활쏘기 시합에서 싯다르타는 할아버지의 활을 꺼냈다. 쇠북까지 뚫어버린 싯다르타의 활쏘기 실력에 야소다라 가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니 석가모니 붓다는 뜻밖에도 무예 실력이 뛰어난, 건장한 신체를 가진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