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500명 이끌고 출가…첫 비구니, 붓다 이모였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2.21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여기는 우리에게 “삶은 자유의 바다”라고 역설하는 붓다의 생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붓다뎐’을 연재합니다. ‘종교’가 아니라 ‘인간’을 다룹니다. 그래서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지지고 볶는 일상의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붓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돼라”고 말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돼라”고 합니다. 어떡하면 사자가 될 수 있을까. ‘붓다뎐’은 그 길을 담고자 합니다.
20년 가까이 종교 분야를 파고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예수를 만나다』『결국, 잘 흘러갈 겁니다』등 10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붓다는 왜 마음의 혁명가일까, 그 이유를 만나보시죠.

 ⑥싯다르타의 연민…먹고 먹히는 세상

#엄마의 동생이 싯다르타를 키웠다

인연은 참 묘했다. 마야 왕비는 출산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엄마를 대신해 어린 싯다르타를 키운 사람은 이모였다. 마하파자파티 고타미. 엄마의 동생이다. 그녀는 싯다르타가 출가하기 전까지 사실상 엄마 역할을 했다. 나중에 카필라 왕국이 멸망하자 고타미는 궁의 여자 500명을 이끌고 붓다를 찾아와 출가한다. 불교 역사에서 가장 먼저 출가한 비구니가 다름 아닌 싯다르타를 키운 이모이자 양어머니 고타미였다. 싯다르타가 어릴 때만 해도 삶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인도의 룸비니 동산에서 만난 힌두교 수행자. 힌두교에서는 붓다를 힌두교의 신들 중 하나로 수용했다. 백성호 기자

인도의 룸비니 동산에서 만난 힌두교 수행자. 힌두교에서는 붓다를 힌두교의 신들 중 하나로 수용했다. 백성호 기자

마야 부인을 대신해 고타미는 왕비가 됐다. 이유가 있다. 붓다 당시의 카필라 왕국은 씨족 공동체였다. 당시 풍습상 왕은 한 집안의 자매들 모두와 결혼하기도 했다. 가령 숫도다나 왕이 마야 부인과 결혼할 때, 고타미를 비롯한 자매들 모두와 혼사가 성립됐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마야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래인 고타미가 왕비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마야 왕비가 세상을 떠난 뒤 왕은 싯다르타를 키워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신하들이 왕자를 키울 적임자로 이모 고타미를 추천했다는 설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다. 어쨌든 고타미는 카필라 왕국의 왕비로서, 또 왕자의 엄마로서 싯다르타를 자상하고 세심하게 보살폈다. 팔리어 경전에는 왕자를 좀처럼 시녀들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돌보았다고 기록돼 있다.

#최고의 스승, 최고의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