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와중에 환자 몸 세웠다, 유방암 여의사 ‘속깊은 기행’

  • 카드 발행 일시2024.02.15

이은숙 전 국립암센터 원장(현 리리유의원 원장, 서울 강남구)의 진료실 책상 위에는 ‘유방암의 진단 및 치료’라는 한 장짜리 그림이 있다. 유방의 구조와 유방암의 종류별 개념을 간단하게 표현한다. 이 그림 한쪽에 메모란이 있다.

유방암의 진단 및 치료

① 가족회의를 소집한다.
② 오늘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③ 당장 항암제 치료 시작한다.
④ 당분간 손자 돌보기가 불가능하다.
⑤ 2주 후 치료 시작하니 대책을 세워라.

이 원장은 얼마 전 고령의 유방암 환자에게 다섯 가지 행동요령을 메모란에 적어 건넸다. 집으로 돌아가서 이른 시일 내에 가족회의를 소집해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니 손자를 돌보지 못한다”라고 선언하라-.

유방암 명의 이은숙 리리유의원 원장이 30일 오후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유방암 명의 이은숙 리리유의원 원장이 30일 오후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원장이 왜 이런 일을 할까. 자기 환자라곤 하지만 남의 집 일인데, 일종의 참견이라면 참견인데. 이 메모에는 환자의 아픈 부분을 살펴주는 세심함이 묻어난다.

60~80대 여성이 유방암에 걸릴 경우 이제는 자기 병이 너무 중요한데도 딸의 애 돌본다고 눈치를 봅니다. 손자 돌보느라 병원에 제때 오지 않거나 심지어 치료를 미뤄요. 그러면 메모를 써줍니다.

이은숙 전 국립암센터 원장이 환자에게 건네는 유방암 그림. 메모란에 다섯 가지 행동 요령이 담겨있다.

이은숙 전 국립암센터 원장이 환자에게 건네는 유방암 그림. 메모란에 다섯 가지 행동 요령이 담겨있다.

70대 이상 초고령 여성의 취약한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의사가 써준 것이니 가족에게 들이미는 게 덜 부담스럽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이 원장은 올해 61세이다. 여자 외과 의사가 그리 흔하지 않은 시기에 외과 의사가 됐다. 유방암 환자는 말 못할 여성만의 고민이 많다. 이 원장은 때로는 동생이 되고, 때로는 친구가 된다. 요즘은 젊은 유방암 환자가 늘어 언니일 때도 많다.

여성 의사의 섬세함, 환자 부부 갈등도 보듬어

이런 것이다. 항암제 중 폐경을 앞당기는 게 있다. 질이 마르거나 성적 욕구가 완전히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이 달라붙으면 귀찮고 힘들다. 질이 너무 아파서 괴롭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약을 안 먹는 환자도 있다. 약을 안 먹으니 죄책감에다 불안감을 느낀다. 이 원장은 “약을 쉬어라” “윤활제를 써봐라” “산부인과 의사와 상의해라” 등등의 조언을 한다. 어떤 때는 “남자는 여자보다 더 동물스러우니 이해하고 관리해라” “같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유방암 환자의 남편이 외도를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