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국 뜨며 서글픔 달랬다, 정약용 울분의 18년 보낸 곳

  • 카드 발행 일시2024.01.10

국내여행 일타강사⑬ 강진 다산 기행

어느 날 문득 세상이 나를 등졌다고 느꼈을 때, 나는 남도의 어느 후미진 갯마을을 떠올린다. 그 갯마을에 가면 한 사내의 울분 어린 18년 세월이 얼룩처럼 남아 있다. 만신창이 몸으로 남도 끝자락에 내몰렸던 오래전 겨울날, 사내는 다시 고향 땅을 밟는 꿈을 버렸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락까지 추락한 생을 악착같이 버텨냈고 마침내 제집으로 돌아갔다. 서른아홉 살에 끌려 내려온 사내는 쉰여섯 살이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사내의 이름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한국사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위인이다. 다산은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1801년 11월 23일(음력)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고, 강진에서 18년, 정확히는 16년9개월 하고도 열흘을 산 뒤 1818년 9월 2일(음력) 경기도 남양주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다산이 생면부지 갯마을에 내팽개쳐진 계절도 요즘처럼 모진 바람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다산이 강진에서 살았던 18년을, 역사는 다산학이 결실을 맺은 시절로 기록한다. 저 유명한 『목민심서』를 비롯해 500권이 넘는다는 다산의 저작 대부분이 이 시기에 집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고상한 학자들에게나 어울리는 평가다. 여행기자에게 다산의 유배 생활은 궁지에 내몰렸던 한 사내의 먹먹한 세월에 더 가깝다. 다산의 강진 생활 하면 다산초당만 아는 사람이 태반인데, 다산은 강진에서 모두 네 곳의 거처를 전전했다. 아직도 강진 땅 구석구석에는 위대한 사상가가 아니라 중년 사내 정약용이 견뎌냈던 울분의 나날이 얼룩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