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와 쥐에 둘러싸였다…‘행복론’ 읽던 영어교사 죽음

  • 카드 발행 일시2023.12.26

엄동설한에 고장난 보일러가 차라리 다행이었다.
시신은 사후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얼마 전 다녀온 현장이다. 고인은 70대 남성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쓰레기들이 쌓여있었다.
노년의 삶을 의욕적으로 살아갔다고 보기엔 어려운 상태였다.

고인은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지낸 분이었다.
그래서 말년의 삶이 더 이해가 안 됐다.

교사, 수많은 배움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직업.
그랬던 그의 마지막 모습은 왜 이렇게 엉망이 됐을까.

고인은 20년 전에 이혼하고 혼자 살았다고 한다.
고독사 유품정리 의뢰는 고인의 자녀로부터 받았다.
그들에게 최근까지 왕래가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냥 내가 본 그대로라면, 쓰레기더미 고인의 집엔 아무도 찾아온 적이 없다.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는 쓰레기.
언제부터 식탁 위에 있었는지 모를 음식물.
냉장고는 그냥 밀폐된 쓰레기통이었다. 온갖 썩은 음식물이 가득했다.
쓰레기만큼 흔하게 바퀴벌레가 나왔고, 심지어 그 사이사이엔 약을 먹고 죽어 있는 쥐가 세 마리나 있었다.

그 와중에 택배박스 그대로 쌓여 있는 건강보조식품 더미가 이질적이었다.
밥도 제대로 안 먹었을 사람이 건강보조식품이라니.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술은 전혀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 안 곳곳 삶을 포기한 흔적이 가득했다.
그 흔적을 들춰봐야 기껏 과거 삶의 파편 같은 것뿐이었다.
바퀴벌레는 일상이었고, 그나마 쥐는 싫었는지 집 안 곳곳에 쥐약을 놓았다.

아무리 오래됐어도 사람이 사는 아파트, 그것도 집 안에 쥐들이 몰려다녔다니.
음식물 쓰레기만 제때 치웠어도 쥐는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고인의 직업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연금으로 말년을 보내기는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왜.

고인은 같은 아파트에서 층을 옮겨다니며 살았더랬다.
처음엔 4층, 그리고 3층. 다시 5층으로 갔다가 1층으로.
삶을 포기한 채 쓰레기더미 속에서 살다 보니 이웃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