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억 오케이!” 미국 속였다…23억에 미사일 비밀 캔 ‘커닝’

  • 카드 발행 일시2023.12.21

1978년까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사거리 500㎞의 지대지 유도탄을 개발할 것.

1974년 5월에 떨어진 박정희 대통령의 최종 명령은 단순하고도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4년 안에 사거리 500㎞의 유도탄을 개발한다는 목표는 분명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최소한 5~6년은 걸리던 시절이었다.

1981년 정도까지라면 500㎞도 가능하겠지만, 1978년까지라면 나이키 허큘리스를 개량해 250㎞ 사거리의 유도탄을 만드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고 목표입니다.

 1973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동서 진영의 맹주인 미국과 소련이 데탕트로 냉전을 완화했다. 과도한 군비 경쟁에 부담을 느낀 양국은 전략무기 제한 협상(SALT)과 탄도탄 요격 미사일 제한 협정(ABMT) 등 군비통제에 합의했다. 그러자 서방 진영의 방산업계는 경영난을 겪었고, 이는 한국에 기회가 됐다. 사진 NARA

1973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동서 진영의 맹주인 미국과 소련이 데탕트로 냉전을 완화했다. 과도한 군비 경쟁에 부담을 느낀 양국은 전략무기 제한 협상(SALT)과 탄도탄 요격 미사일 제한 협정(ABMT) 등 군비통제에 합의했다. 그러자 서방 진영의 방산업계는 경영난을 겪었고, 이는 한국에 기회가 됐다. 사진 NARA

박 대통령이 내려보낸 문서를 들여다보며 한숨짓고 있는 심문택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에게 유도탄 개발 책임자인 이경서 박사가 꺼낸 말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개발 기한과 사거리 문제에 대해선 추후에 박 대통령에게 소상히 설명하기로 하고, 나이키 허큘리스를 개량하는 사업을 우선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