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여인이 알려줬다…‘국산 첫 로켓’ 연구소의 비밀

  • 카드 발행 일시2023.12.14

1971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유도탄 개발을 지시하고, 이듬해 1972년 9월 초 우리나라 최초의 유도탄 개발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공업 계획’이 완성됐다. 이 계획안의 핵심은 미군이 공여한 나이키 허큘리스(NH)를 활용해 1981년까지 사거리 250㎞의 국산 지대지 유도탄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1974년 12월의 국산 무유도 로켓 홍능1호 시험발사. 홍능 1호는 본격적인 백곰 개발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플래닛미디어

1974년 12월의 국산 무유도 로켓 홍능1호 시험발사. 홍능 1호는 본격적인 백곰 개발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플래닛미디어

첫 국산 로켓의 사거리 문제

그러나 이 최초의 청사진은 박 대통령의 지시와 당시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을 책임지고 있던 오원철 청와대 경제 제2수석의 요구사항 추가로 한 차례의 심각한 변경을 겪게 됐다. 애초의 ‘항공공업 계획’을 검토한 박 대통령은 곧바로 국방과학연구소(ADD)에 1981년까지 사거리 500㎞의 장거리 유도탄 개발 계획을 세우고, 연구소 부지 선정과 시험장 건설 등 구체적인 실시계획까지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오원철 수석. 중앙포토

1972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오원철 수석. 중앙포토

그런데 오 수석이 이를 전하면서 ‘단거리 함대함 유도탄 우선 개발, 장거리 지대지 유도탄 후순위 개발’이라는 지침을 추가했다. 유도탄 개발의 실무 책임을 맡은 이경서 박사의 경우 일관되게 중장거리 유도탄 우선 개발이라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상당한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중장거리의 대형 유도탄이 오히려 단거리의 소형 유도탄보다 개발하기 쉽고, 나이키 허큘리스를 이용한 중거리 유도탄 개발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는 것이 이경서 박사의 생각이었다. 반면에 오원철 수석은 전투에서 곧장 활용이 가능한 단거리 유도탄 개발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