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세번 놀라게한 ‘종지기 죽음’…성탄절, 권정생 만나야할 때

  • 카드 발행 일시2023.12.13

국내여행 일타강사⑨ 권정생 생가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신앙이 없어도 교회와 성당이 궁금해지는 계절입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군대에서도 초코파이의 유혹을 뿌리친 심지 곧은 무신론자입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만 다가오면 십자가 있는 풍경이 그리워지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여행기자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요. 산사에 들면 부처님께 삼배 올리고, 이슬람 국가를 여행할 때는 술과 돼지고기를 참아야 하지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하면 저는 시골의 한 예배당이 사무칩니다. 이 계절만 돌아오면, 안동의 그 작은 예배당과 녹슨 종탑이 눈에 밟힙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60번 넘게 종을 쳤던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허구한 날 맨손으로 새벽종 줄을 잡아당겼던 그 병든 종지기의 딱하고 독했던 삶을 생각합니다. 그는 오래전에 교회를 떠났지만, 교회 종탑 아래에는 아직도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새벽종 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안동 일직교회 종탑 아래에 있는 권정생 선생의 문장. 2010년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안동 일직교회 종탑 아래에 있는 권정생 선생의 문장. 2010년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그 사람의 이름은 권정생(1937∼2007)입니다. 마을 교회에서는 종지기 아저씨이었고, 동네에서는 “억수로 착한 사람”이었고, 한국 문학사에서는 밀리언셀러를 생산한 최초의 동화작가였던 사람. 50년 넘게 병마와 싸웠고 40년 넘게 오줌 주머니를 차고 살았던 사람.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는데, 죽고서 보니 10억원을 모아놨던 사람. 그 큰돈을, 아이들이 책을 사서 생긴 돈이니 아이들에게 돌려주라고 말하고 떠난 사람.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당신이 머물다 간 자리를 찾았습니다. 10여 년 전 처음 왔을 때 혼자 울다 오기에 좋은 곳이라고 썼던 그곳입니다. 이번에는 길벗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당신 곁을 지켰던 안동 시인 안상학(61)입니다. 스무 살 갓 넘은 대학생 때부터 당신의 그 흙집을 무시로 드나들었다지요. 당신이 가시고서 꾸려진 권정생 어린이문화재단의 사무처장을 맡기도 했었습니다. 시인이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당신의 일화들을 여럿 들려주었습니다. “왜 회고록이나 평전을 안 썼느냐” 물었더니 “아직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더군요.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압니다. 스승이든 연인이든, 너무 가까웠던 인연은 선뜻 꺼내기 어렵지요.

안동 일직교회 종탑. 권정생은 1968년부터 1983년까지 종지기로 살며 새벽마다 종을 쳤었다. 손민호 기자

안동 일직교회 종탑. 권정생은 1968년부터 1983년까지 종지기로 살며 새벽마다 종을 쳤었다. 손민호 기자

오늘 일타강사는 권정생이 살았던 세상을 여행합니다. 어쩌면 여행은 낯선 공간을 경험하는 일이 아니라 낯선 시간을 경험하는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가 살았던 시간이 오늘 여기의 공간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당신의 문장을 최대한 많이 인용하려 합니다. 당신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받아 적는 것처럼 당신을 기리는 행동도 없어서입니다. 아래에 받아쓴 선생의 글만 가슴에 새겨도 여러분의 크리스마스는 은총과 사랑으로 충만하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