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권 “각하 살려주십시오”…정인숙 피살에 靑 달려갔다 (61)

  • 카드 발행 일시2023.12.06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집권 기간 중 고위직으로 장수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정일권(1917~94년)씨일 것이다. 5·16혁명 때 주미대사였던 정씨는 외무부 장관(63~64년, 66~67년 겸직)→국무총리(64~70년)→공화당 의장서리(72년)→국회의장(73~79년) 등 대통령을 제외한 최고위직을 가장 오랫동안 누렸던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그의 어떤 점을 높이 산 것일까. 박 대통령은 그때그때 당신이 필요한 부분을 충족해 주는 사람들을 측근으로 중용했다.

김형욱이 저돌적 공격성을 보여줬다면 이후락은 일을 꾸미는 재기가 뛰어났고, 김성곤은 돈과 조직을 모으는 힘이 있었다. 정일권은 이들과 비교해 딱히 이렇다 할 장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관운(官運)이 특별한 건 분명했다. 무슨 일을 시키더라도 무난하게 처리하고 요령도 좋았다. 속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는 기가 막히게 점잖고 온화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한테 인상 좋은 사람으로 비춰졌다. 자리에 대한 집념이 강했지만 대통령 친위부대들의 경계 대상이 될 만큼 욕심을 부리진 않았다. 정일권은 ‘대통령 자리를 넘겨다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상대방한테 권력욕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김형욱·이후락이나 김성곤의 공화당 4인방은 그를 위험시한다거나 견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