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레 의사 위로하고 떠났다, 기적의 암환자가 남긴 레모나

  • 카드 발행 일시2023.12.01

어느 날 병원 로비를 지나가고 있는데 누군가 덥석 내 팔을 잡았다.

“어, 선생님! 나 ○○○이에요. 환자 A랑 같이 다니던 사람! 기억해요?”

아주 오랫동안 우리 병원에 다니던 환자와 종종 같이 있던 다른 과 환자였다. 두 분이 가끔은 일부러 날짜를 맞춰 입퇴원하시는 것 같았기에 내 기억 속에도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요새 그 사람 어때요? 작년까지는 평소처럼 좋아 보였는데. ”

웃으면서 물어보는 얼굴을 마주하자 A환자와 보냈던 나날들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 환자는 내가 인턴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아주 유명한 분이었다. 당시를 기준으로 10년 전에 폐암 4기를 진단받았는데 기적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 놀라운 일들이 연속돼 한 번의 재발까지 이겨내고 완전 관해(검사상 잔존 암의 증거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의 소견을 들은 뒤 관리 차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하고 계셨었다.

혈액종양내과 교수님도, 십 수년간 근무한 시니어 간호사 선생님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며 한결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를 항상 반가워했다. 기적의 기운에 더해 준수한 외형과 아내를 끔찍이 아끼는 다정한 면모도 모두가 좋아했던 이유에 큰 몫을 차지했다.

내가 주치의를 맡은 지 몇 달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누적되는 업무에 나도 모르게 환자 앞에서 한숨을 내뱉은 적이 있었다. 아차 싶어 얼른 기침으로 숨기려 했지만 환자분은 뻔히 안다는 듯 내게 말했다.

“많이 힘들지요? 내가 여기를 오래 다녔는데 선생님 선배들도 엄청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다 잘 이겨냈잖아요. 김 선생도 지금만 버티면 선배보다 더 잘할 거예요.” 대화 속 ‘선배’는 당시 우리 과 고참 교수님이셨다. 그 말과 함께 비타민C 레모나 하나를 건네받았던 순간이 지금까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