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백수가 수십억 벌었죠” 문화답사 ‘피켓팅’ 부른 남자

  • 카드 발행 일시2023.11.30

더 헤리티지: 번외편① 문화유산 파워라이터 유홍준

이 사람을 무어라 부를까. 문화재청장(2004년 9월~2008년 2월)을 지냈어도 ‘500만 부의 사나이’ ‘문화유산 전도사’ 쪽이 어울린다. 필력·입담·안목, 무엇보다 발품으로 써낸 단독 저서가 40여 권이다. 공동 저술 수십권을 빼고도 1년에 한 권꼴로 책을 냈다. 역사와 평론까지 곁들여 우리나라 미술과 문화유산을 종횡무진 누비고 전도해온 유홍준(74·미술사학과) 명지대 석좌교수 말이다.

올해는 그의 출세작이자 스테디셀러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하 『답사기』) 출간 30주년. 기자도 그해 여름 책을 들고 ‘남도답사 1번지’ 강진·해남 등을 찾은 50만 명 중 하나다. 스마트폰이나 카카오택시가 없던 시절이라 도착하면 관광 안내소를 찾아가 지도가 담긴 팸플릿부터 구했다. 답사기를 숙독하고 갔는데도 절에 놓인 석등이며 탱화가 ‘아는 만큼 보이지 않아’ 좌절도 했다. 실은 책을 읽고 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붉은 황톳길을 걸으며 산바람과 대나무 숲에 취하는 게 좋았다. 그런 ‘신도’들을 무수히 만들어낸 30년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관련) 징역형 받은 게 복권이 안 돼서 1983년 건국대 전임강사에 채용되고도 하루 만에 취소됐어요. 그전까지 일한 ‘계간미술’ 기자로 다시 오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나 길바닥에서 백수로, 미술평론가로 살겠소’ 했죠. 당시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국미술사가 굉장히 부실했어요. 91년까지 7년 동안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식으로 오픈 강좌를 많이 했습니다. 한 기수가 끝나면 수강생들 데리고 2박3일 답사를 다녔는데, 재수강은 못해도 답사는 꼭 가려고들 해요. 그렇게 월례 답사회가 시작된 겁니다. 내 이력의 처음부터 미술사와 답사는 늘 붙어있던 거죠.”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배경 삼아 포즈를 취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최근 복원을 마친 광화문 월대는 그가 청장 시절 역점을 기울인 경복궁 복원 사업의 일환이다. 전민규 기자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배경 삼아 포즈를 취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최근 복원을 마친 광화문 월대는 그가 청장 시절 역점을 기울인 경복궁 복원 사업의 일환이다. 전민규 기자

그렇게 시작한 길을 그는 평생 걸었다. 요즘도 부여의 주말 거처 ‘휴휴당’을 거점으로 ‘5도2촌’(5일은 도시, 2일은 시골)을 추구하면서 연 4회 부여 일대 답사를 이끈다. 책도 부지런히 펴냈다. 집필에 13년 걸린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이하 『강의』)는 총 6권으로 최근 완간했고, 문화유산답사와 한국사를 엮어 안내하는 『국토박물관 순례』(이하 『순례』) 1·2권도 동시에 나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곳은 광화문 월대 앞. 알아본 시민들이 연신 인사하고 기념사진을 청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tvN) 등 예능 프로까지 출연해 문화예술을 앞장서 소개한 덕이 크다. “우리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알리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분”이라는, 어느 국립박물관장의 말이 실감 났다. 인터뷰는 최근 펴낸 그의 주요 저작과 학문적 보람까지 짚으며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