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김장하듯 ‘풀’ 쑵니다…고려불화 천년의 때 벗긴 비결

  • 카드 발행 일시2023.11.23

⑩ 고려불화 복원 1인자 박지선 교수

최근 일본 후쿠오카현 규슈국립박물관에선 현존하는 가장 큰 고려불화가 관람객을 맞았다. 일본 사가현 가라쓰(唐津) 가가미진자(鏡神社·경신사) 소장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세로 419.5㎝, 가로 254.2㎝)다. ‘숭고한 믿음의 아름다움-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이라는 전시 제목을 대표하기라도 하듯 정교하고 웅장한 만듦새가 일품이다. 한국에 단 두 차례(1995, 2009)만 나들이한 작품이라 국내 미술 관계자 및 불화 애호가들이 앞다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전 세계적으로 전해지는 고려불화는 170여 점(탱화 기준). 이 가운데 일본의 사찰·박물관에 소장된 게 120여 점이다. 국내엔 30점 안팎에 불과하다.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했던 조선시대의 불화가 다수의 벽화를 포함해 1만여 점 남아 있는 데 비춰보면 아쉬운 숫자다. 정교한 필치와 채색, 독특한 도상 등에서 당대 귀족문화의 화려함과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학문화재단 소장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서 관음보살 상반신을 확대한 모습. 199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로선 한국 고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인 160만 달러에 낙찰된 작품으로 1998년 보물로 지정됐다. 사진 우학문화재단

우학문화재단 소장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서 관음보살 상반신을 확대한 모습. 199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로선 한국 고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인 160만 달러에 낙찰된 작품으로 1998년 보물로 지정됐다. 사진 우학문화재단

달리 생각하면 0.1㎜ 선묘의 회화가 천년에 걸쳐 보존돼 온 게 기적 같은 일이다. 고려불화를 장인의 솜씨 그대로 되살리는 보존처리 전문가는 국내외를 통틀어 많지 않다. 박지선(62·문화재보존처리학과) 용인대 교수는 고려불화만이 아니라 불경·초상화 등 서지·회화 복원에서 국내 1인자로 꼽힌다. 스스로는 장황(粧潢, 표구) 전문가로 소개하는 편이다. 국내 대표 식품기업인 샘표간장 집안의 딸이란 점도 그가 문화재 복원이라는 ‘가시밭길’을 자처한 배경을 궁금하게 만든다.

“일 하면서 가장 좋은 거요? 귀한 유물을 원 없이 만져본 거죠. 루이비통 짝퉁이 아무리 감쪽 같아도 진품을 많이 보고 써본 사람은 가려내듯이 유물도 많이 겪어본 사람이 눈을 뜹니다. 일본에서 도제식으로 연수할 땐 미술사 시간에 슬라이드로 본 그림들을 보존처리했는데, ‘이 명작이 이렇게 나왔구나’ 천년의 비밀을 깨우치는 기분이었죠.”

18세기 조선불화 복원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원본 크기로 확대 프린트한 대형 사진 앞에 선 박지선 용인대 교수. 실물 보존처리에 앞서 현재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손상된 부분을 꼼꼼히 체크해 되살려낸다. 강정현 기자

18세기 조선불화 복원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원본 크기로 확대 프린트한 대형 사진 앞에 선 박지선 용인대 교수. 실물 보존처리에 앞서 현재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손상된 부분을 꼼꼼히 체크해 되살려낸다. 강정현 기자

자존심 건 고려불화 낙찰…용인대 측 20억원 깜짝 베팅  

“제가 용인대와 인연을 맺게 된 게 고려불화 덕이에요. 지금 이사장님(이학·70·우학문화재단 이사장)이 1991년에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수월관음도를 한국 고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인 160만 달러(현재 환율 약 20억6600만원, 수수료 10% 별도)에 사들여서 보존처리를 맡기셨거든요. 당시 호암미술관이 이미 고려불화를 갖고 있었는데, 이에 질세라 파격적인 고가에 낙찰받으셨죠. 그로 인해 전 세계에 ‘고려불화가 대체 뭐야’ 하는 관심을 불 지피기도 했고요.”

우학문화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수월관음도 입찰엔 고(故) 이건희 삼성회장과 일본 기업,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까지 뛰어들어 치열하게 진행됐다. 이학 이사장이 “(낙찰가에) 제한 두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결국 승자가 됐다. 거액 비딩에 깜짝 놀란 소더비 회장에게 이 이사장은 “나에게 이건 모나리자와 다름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외 옥션에서 고미술품을 낙찰 받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에 신고하고 정식 통관절차로 들어온 1호 문화재”라고 재단 관계자는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