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시오, 월남은 끝났구먼” 키신저 정색케 한 박정희 말 (57)

  • 카드 발행 일시2023.11.27

미국과 월맹 간 휴전협상이 한창이던 1972년 10월이었다. 미국은 10년 넘게 끌어온 전쟁을 끝내려 했다. 월남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월남군의 전력을 강화해 독자적으로 방어케 하는 이른바 ‘월남화(Vietnamization·월남전은 월남인에게 맡긴다)’에 박차를 가했다. 어느 날 필립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가 국무총리실로 나를 찾아왔다.

하비브 대사는 내게 “월남의 공군력 증강을 위해 미국이 한국에 대여한 F-5A 전투기 3개 대대를 빼서 월남에 줘야겠습니다”고 말했다. 일종의 통보에 가까웠다. 나는 그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했다. “미국은 월남만 중요하고 한국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3개 대대를 가지고 가면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리는데 안 됩니다. 내줄 수 없소.” 전투기 3개 대대면 54대다. 그때 한국이 보유한 F-5A 전투기는 모두 76대였다. 내 말에 아랑곳없이 하비브 대사는 “미국이 정한 방침이니 고려해 달라”며 돌아갔다. 며칠 뒤 그가 “월남으로 전투기를 보낼 준비가 됐느냐”며 다시 찾아왔다. 나는 “아무 준비도 안 했소. 우린 월남에 한 대도 보낼 생각이 없소”라고 답했다. 자신의 말을 들은 척 만 척한 게 기분이 상했던지 하비브 대사가 “이건 한국 게 아니라 미국 소유 전투기입니다. 주인이 달라는데 못 주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따졌다.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투기 소유주가 미국임은 나도 분명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일단 한국 땅에 온 이상, 주인이 한국으로 바뀌었소. 우리가 못 주겠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내가 막무가내로 버티자 하비브 대사는 청와대로 올라갔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리가 되지도 않는 말만 합니다”라며 하소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총리하고 협상을 시작했으면 거기서 끝내야지, 왜 여기 오느냐”며 그를 돌려보냈다. 박 대통령이 나를 불러 무슨 일인지를 묻기에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내가 “미군 전투기도 한국에 온 이상 한국이 주인이다”고 대꾸했다고 했더니 “그래서 나한테 왔구먼”이라며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