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집사’가 미심쩍었다…테헤란로 한밤 택시 추격전

  • 카드 발행 일시2023.11.01

얘야, 그게 본질이야.

H가 나지막이 되받았다.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었던 그 어드메, 맵싸한 밤공기를 피해 중앙일간지 기자 G가 법조팀장 H의 차 안에서 은밀하게 취재 내용을 보고하던 중이었다.

그는 경쟁지에 특종을 빼앗긴 데 대한 변명을 한참 늘어놓은 뒤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참, 이수동의 집에서 해군참모총장 지원자 같은 사람들의 이력서가 꽤 많이 나왔다네요. 본질이 아닌 것 같아서 기사가 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용호 이름 석 자만 붙잡고 석 달을 특별검사팀 사무실 근처에서 유리걸식하던 그에게 이용호와 무관한 팩트는 팩트가 아니었다. 3년 차 햇병아리 기자에게 그 이력서들과 그것이 발견된 장소의 의미를 꿰뚫어 볼 혜안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법조팀과 정당팀을 오가며 감각을 단련한 H는 달랐다. 보고를 듣는 순간 그의 머리에는 ‘비선(秘線)’ ‘국정농단’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단독이야?”
“예? 아, 예.”

당장 특검 차정일에게 팩트를 확인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99% 정확한 정보”라는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난감했다.

차정일은 기자들의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 출근길과 퇴근길 1분여 정도씩 모습을 드러낼 때도 그를 독점할 순 없었다. 그에게 달려드는 수십 명의 기자들과 공유해야 했다.

방법은 단 하나. G는 다음 날 오후 신문 ‘초판’용 기사를 마감한 뒤 큰 길가로 나갔다. 그러고는 특검팀 사무실이 있던 옛 한국감정원 건물 쪽을 주시했다. 어슬녘이 되자 차정일이 여느 때처럼 구름 같은 기자 떼를 몰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차가 움직이면서 기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던 순간, G는 손을 들어 빈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첩보영화에서 본 듯한 대사를 외쳤다.

기사님, 저 차 따라가 주세요!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