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탄산수'가 돼버린 바다…산호초에 미친 충격적 결과 [창간기획-붉은 바다]

'따뜻한 탄산수'가 돼버린 바다…산호초에 미친 충격적 결과 [창간기획-붉은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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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크리스티나 벡 박사가 해양산성화 실험 중인 산호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크리스티나 벡 박사가 해양산성화 실험 중인 산호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⑩탄산수 바다

벌써 뼈가 녹기 시작했어요. 더 하얗게 변한 게 보이죠?

머리에 쓴 헤드라이트로 연구용 수조 속 산호를 비추던 크리스티나 벡 박사가 말했다. 주로 북대서양의 차가운 해수에 서식하는 ‘로너리아 페르투사(Lopheliapertusa)’라는 냉수성 산호였다.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크리스티나 벡 박사가 해양산성화 실험 중인 산호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크리스티나 벡 박사가 해양산성화 실험 중인 산호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산호를 초정밀 전자저울에 올려놓은 벡 박사는 “실험을 시작한 지 4개월 반이 지났는데 벌써 산호의 무게가 줄어들고 있다”며 “산호 골격 곳곳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산호가 담겨있던 수조에는 ‘pH 7.7’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산성도를 나타내는 수소이온농도 지수(pH)가 약 7.7이라는 뜻이다. 벡 박사는 이 수조를 가리키며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바다’라고 했다.

‘산호초 골다공증’에 망가지는 해양생태계

지난 7월 20일 방문한 스코틀랜드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의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지난 7월 20일 방문한 스코틀랜드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의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차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인 세인트압스. 이곳은 영국의 대표적인 청정 해수 지역으로, 북해에서 끌어올린 바닷물로 각종 연구를 진행하는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St Abbs Marine Station)가 있다. 지난 7월 20일 기자가 방문한 이 연구소에선 에든버러대의 세바스찬 헤니게 박사와 벡 박사가 전 세계 바닷속 죽은 산호에게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을 연구 중이었다. 사람처럼 뼈에 구멍이 뚫리는 이른바 ‘산호초 골다공증’ 현상이다.

이들이 산호초의 골다공증 현상을 연구하는 건 해양산성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해양산성화란 대기 중에 증가한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녹아들어 점차 산도가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바다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약 30%를 흡수하는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흡수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서 바다가 빠르게 산성화되기 시작했다. 흡수된 이산화탄소가 물과 만나 탄산을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해수의 평균 pH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8.2였지만 현재는 약 8.08이다. 여전히 바다는 산성의 기준(pH7 이하)보다 높은 약염기성을 띄고 있지만, 문제는 산성화의 속도다.

산호를 비롯해 바다 플랑크톤, 굴, 조개, 게 등은 골격과 껍질이 탄산칼슘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바닷물의 pH가 낮아질수록 탄산칼슘 형성에 필요한 탄산이온이 줄어든다. pH 수치가 0.1만 떨어져도 바닷속 탄산이온의 농도는 약 20%가 감소하는데, 이는 탄산칼슘 골격을 가진 바다 생물의 생존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 내 위치한 해양산성화 실험실의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 내 위치한 해양산성화 실험실의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쌍둥이 해악’ 지구온난화와 해양산성화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실험을 앞둔 정상 상태의 ‘로너리아 페르투사(Lophelia pertusa)’라는 냉수성 산호의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실험을 앞둔 정상 상태의 ‘로너리아 페르투사(Lophelia pertusa)’라는 냉수성 산호의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특히 해양산성화와 온난화의 결합은 산호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여러 산호초가 모여 바닷속 숲을 형성하는 산호 군락은 다양한 바다 생물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살아있는 산호뿐만 아니라 골격만 남은 죽은 산호도 해양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 중 하나다. 탄산칼슘으로 이뤄진 뼈대가 군락의 일부를 이루고 새로운 산호가 자랄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수 온도가 상승해 정상적인 산호가 파괴되고 해양산성화로 다시 골다공증에 걸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해양산성화가 지구온난화와 함께 ‘쌍둥이 해악(evil twin)’으로 불리는 이유다. 헤니게 박사는 “해양산성화로 인해 죽은 산호의 골격이 무너져 내리면서 산호 군락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바다 숲의 구조가 단순해지고 있다”며 “산호가 만들어낸 바다 생물의 수많은 서식지이자 산란처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연구용 수조에 담긴 ‘로너리아 페르투사(Lophelia pertusa)’라는 냉수성 산호의 모습. 산성도가 높은 해수의 영향으로 골격이 더 하얗게 변했다.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연구용 수조에 담긴 ‘로너리아 페르투사(Lophelia pertusa)’라는 냉수성 산호의 모습. 산성도가 높은 해수의 영향으로 골격이 더 하얗게 변했다.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2100년에는 조개·굴 등 어패류 사라질 수도

헤니게 박사의 연구팀은 지난 3월부터 연구소에 21개의 작은 연구용 수조를 설치해 북대서양에서 채취한 산호를 옮겨놓았다. 수조마다 제각각 수온과 산소 농도, 산성도 등을 달리했다. 해수의 특성에 따라 산호의 골격이 특정 기간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한 달 반 단위로 산호의 무게를 측정하고 컴퓨터 단층 촬영(CT)을 통해 골격의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이날 벡 박사가 보여준 CT 사진 속의 산호는 골밀도가 낮아진 골다공증 환자의 뼈와 비슷했다. 산호의 골격 표면은 흠집이 생긴 것처럼 곳곳이 패어있었고 두께가 점점 얇아지더니 아예 구멍이 뚫린 부위도 보였다.

지난 7월 20일 스코틀랜드 세인트압스의 어촌 마을에서 만난 어부 필립 러더포드씨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지난 7월 20일 스코틀랜드 세인트압스의 어촌 마을에서 만난 어부 필립 러더포드씨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전문가들은 바다의 폭염인 해양열파와 함께 해양산성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고 이대로라면 2100년에 해수의 pH가 7.6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바다에선 산호 군락이 사라지고, 조개와 굴 등 각종 어패류도 살아남기 힘들다. 헤니게 박사는 “2000년대 들어 미국 서해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굴 양식장의 대량 폐사 문제는 산성화된 바닷물이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세인트압스와 맞닿은 북해에서 12년간 바닷가재를 잡아 온 어부 필립 러더포드씨는 “예년과 달리 한 달이나 더 빠른 시기에 바닷가재가 잡히는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바닷물이 점점 더 따뜻해지는 기후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바다도 피할 수 없는 해양산성화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크리스티나 벡 박사가 컴퓨터 단층 촬영(CT)을 통해 분석한 산호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지난 7월 20일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에서 크리스티나 벡 박사가 컴퓨터 단층 촬영(CT)을 통해 분석한 산호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세인트압스=이가람 기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2015년부터 8년간 진행한 해수 채집 분석 결과 동해와 서해, 남해 모두 전 세계 대양과 비슷한 수준으로 해양산성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상북도 후포 해역 등에서 채집한 대게와 비단가리비, 참가리비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선 모두 pH가 낮을수록 생존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동식 국립수산과학원장은 “해양산성화 현상은 패류, 갑각류, 어류 등 다양한 수산생물은 물론 해양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위협 요소”라며 “해양산성화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빈 스콧 세인트압스 해양연구소장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해양산성화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기술의 진보를 기다리기에 앞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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