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바다에 '철가루' 뿌리는 박사님…지구의 폐 되살린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뜨거운 바다에 '철가루' 뿌리는 박사님…지구의 폐 되살린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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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리과학센터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난 윤주은 박사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리과학센터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난 윤주은 박사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⑨지구의 푸른 폐를 되살리다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리과학센터 본관 건물. 한때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였던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의 연구실이 있었던 이 건물에 들어서자 한 한국인이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케임브리지대 기후회복센터(centre for climate repair)의 유일한 한국인 연구원인 윤주은 박사(36)였다. 윤 박사의 연구실은 이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하대 해양학과를 졸업하고 인천대에서 해양생지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윤 박사는 지난 2020년부터 기후회복센터에 합류해 박사 후 연구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리과학센터의 전경.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리과학센터의 전경.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케임브리지대 기후회복센터는 지구온난화 등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바다를 이용한 기후 복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양학자인 윤 박사가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이유다. 현재 전 세계에선 바다의 탄소 저장 능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블루카본(Blue carbon)’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지구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위기를 막는 탄소저장고 역할을 해왔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아지면서 저장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기후회복센터는 이러한 해양생태계의 탄소 흡수 역할을 회복시키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윤 박사는 전 세계에서 지구온난화의 해법으로 해양 비옥화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몇 안 되는 연구자다. 바닷속 식물성 플랑크톤은 육상의 나무처럼 광합성 과정을 통해 해수면과 접촉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들이 성장하기 위해선 질소나 인, 철과 같은 영양소가 필요한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인해 해저 바닥의 영양염이 풍부한 물이 표층으로 올라오지 못해 먹이가 부족해져서다. 해양 비옥화는 바다에 이러한 부족한 영양염을 인공적으로 살포해 식물성 플랑크톤을 대량 증식해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방식 중 하나다. 실제 실험에선 쌀겨에 철가루 등을 입혀 바다에 뿌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4월 아라비아해에서 윤주은 박사와 인도 고아 국립해양조사원 등이 함께 실시한 소규모 해양 비옥화 실험 현장의 모습. 메조코즘 백(mesocosm bag)을 이용해 만든 일정 공간의 해양생태계 내에서 영양염을 공급한 식물플랑크톤의 반응을 확인했다. 사진 인도 고아 국립해양조사원 제공

지난해 4월 아라비아해에서 윤주은 박사와 인도 고아 국립해양조사원 등이 함께 실시한 소규모 해양 비옥화 실험 현장의 모습. 메조코즘 백(mesocosm bag)을 이용해 만든 일정 공간의 해양생태계 내에서 영양염을 공급한 식물플랑크톤의 반응을 확인했다. 사진 인도 고아 국립해양조사원 제공

지난해 4월 아라비아해에서 윤주은 박사와 인도 고아 국립해양조사원 등이 함께 실시한 소규모 해양 비옥화 실험 현장의 모습.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철가루를 입힌 쌀겨가 바다 위에 떠 있다. 사진 인도 고아 국립해양조사원 제공

지난해 4월 아라비아해에서 윤주은 박사와 인도 고아 국립해양조사원 등이 함께 실시한 소규모 해양 비옥화 실험 현장의 모습.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철가루를 입힌 쌀겨가 바다 위에 떠 있다. 사진 인도 고아 국립해양조사원 제공

윤 박사는 “지난해 통가에서 대규모 화산폭발이 일어났을 때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호주 북부 연안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바다에 떨어진 화산재로 식물성 플랑크톤이 증가했다”며 “자연적으로 영양염이 공급되는 과정에서 식물성 플랑크톤이 늘어나는 현상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윤 박사는 영양염 제한 상태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윤 박사는 “남극해의 식물 플랑크톤은 철분이 부족하고 북태평양은 질산염이 부족하다”며 “나사(NASA)에서 제공하는 인공위성 자료와 머신러닝 등을 활용해 각 지역에 따른 부족한 영양염 상태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효과 둘러싼 논란 커…“실험 통해 데이터 보완해야”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하지만 해양 비옥화는 가장 논쟁적인 실험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88년 학계에 관련 개념이 제시된 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총 13차례 실험이 진행됐지만, 효과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 속에 2009년 이후 실제 해양에서의 실험은 멈춘 상황이다. 생태계 파괴 우려로 환경단체의 반발이 크고 국제규약은 대규모 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효과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윤 박사는 “대부분 실험에서 철가루 등의 영양염을 공급해 식물플랑크톤의 양이 증가한 것은 이미 입증됐다며”며 “가장 중요한 이산화탄소 격리가 이뤄졌는지 아닌지는 짧은 실험 기간으로 인해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탄소 저감 효과가 입증되기 위해선 식물플랑크톤의 수가 증가하는 것 뿐만 아니라, 탄소를 흡수한 식물플랑크톤이 깊은 바닷속으로 얼마나 많이 침강돼 탄소 격리가 이뤄지는지도 함께 측정돼야 한다. 현재 윤 박사와 함께 연구를 진행 중인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와 하와이대 등의 협력단은 해양비옥화 실험을 통해 탄소 저감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실험 방식을 연구 중이다.

“한국 주도의 해양비옥화 실험 기대”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극대륙의 장보고과학기지. [사진 극지연구소]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극대륙의 장보고과학기지. [사진 극지연구소]

윤 박사가 이 연구에 뛰어든 건 한국이 시도했던 해양 비옥화 실험이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 극지연구소는 지난 2016년 남극 근해에서 소규모의 해양 비옥화 실험을 추진했었다. 당시 윤 박사는 박사과정생으로 해당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 윤 박사는 “2009년 이후 멈춘 실험을 한국이 다시 주도해 시작한다는 것에 기대가 컸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후 윤 박사는 박사 학위를 딴 뒤 관련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케임브지리대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전 세계 과학자들과 함께 2025년에 실제 해양 비옥화 실험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윤 박사는 “언젠가는 다시 한국 주로도 해양비옥화 실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리과학센터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난 존 테일러 교수. 지구온난화에 대한 해법으로 다시마 재배를 연구 중인 테일러 교수가 연구를 위해 만든 남아프리카 나마비아 해안의 다시마 양식장을 설명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리과학센터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난 존 테일러 교수. 지구온난화에 대한 해법으로 다시마 재배를 연구 중인 테일러 교수가 연구를 위해 만든 남아프리카 나마비아 해안의 다시마 양식장을 설명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기후회복센터에선 블루카본의 또 다른 계획으로 ‘다시마 재배’에 주목하고 있다. 다시마와 미역과 같은 해조류 역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 식물 플랑크톤과 같은 역할을 한다.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존 테일러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켈프(Kelp·다시마)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바닷속에서 45m 높이까지 자랄 수 있다”며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주변 해수로부터 탄소를 자신의 조직에 저장해 상당량의 탄소를 고립시키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테일러 교수의 연구팀은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인근 해안에서 다시마를 기르며 다시마의 탄소 축적 능력을 연구하고 있다.

“기후위기 속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좋은 선택 아냐”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만난 숀 피츠제럴드 케임브리지대 기후회복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만난 숀 피츠제럴드 케임브리지대 기후회복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일각에선 해양 비옥화나 대규모 다시마 재배처럼 인위적으로 기후를 조정하려는 ‘기후공학’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일부 환경단체는 기후공학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이에 대해 숀 피츠제럴드 케임브리지대 기후회복센터장은 “가장 중요한 건 위험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며 “기후위기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해양생태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이 분명 필요하고 과학자들도 각종 실험과 모델링을 통해 지식을 쌓아나가는 단계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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