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녹아? 다시 얼리면 되지…'구름 양산' 만드는 괴짜과학자 [창간기획-붉은 바다]

북극 녹아? 다시 얼리면 되지…'구름 양산' 만드는 괴짜과학자 [창간기획-붉은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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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5일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인근에서 촬영한 북극해 해빙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23년 4월 5일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인근에서 촬영한 북극해 해빙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⑥북극을 다시 얼려라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과학자들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른바 ‘북극 다시 얼리기’(Refreezing the Arctic) 프로젝트. 북극 해빙의 소멸을 경고하는 예측이 잇따르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출범한 RAF(Refreeze the Arctic Foundation)를 중심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기후회복센터와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기후연구소가 힘을 모았다. 명칭 그대로 북극을 다시 얼리기 위한 목표를 가진 연구재단이다.

북극 얼리기에 나선 ‘괴짜과학자’

2011년 영국에서 방영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포로들의 수용수 탈출에 관한 다큐멘터리 포스터. 이 프로그램에서 사진 속 휴 헌트 교수는 공학자로서 땅굴 파기와 탈출이 실제로 가능한지를 재현했다. IMDb

2011년 영국에서 방영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포로들의 수용수 탈출에 관한 다큐멘터리 포스터. 이 프로그램에서 사진 속 휴 헌트 교수는 공학자로서 땅굴 파기와 탈출이 실제로 가능한지를 재현했다. IMDb

지난 2월 RAF에 합류한 케임브리지대의 휴 헌트 교수도 지구온난화에 맞서 북극을 지키기 위해 난제에 도전하는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응용역학을 가르치는 헌트 교수는 영국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괴짜과학자’이기도 하다. 대중 강연과 TV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과학 원리를 쉽게 설명하고 본인이 직접 실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공로로 영국의 왕립공학회가 공학 기술의 대중 홍보에 힘쓰는 우수한 공학자에게 수여하는 루크상도 받았다.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대 내에 위치한 헌트 교수 연구팀의 실험실에서 그를 만났다. 실험실 입구에는 고출력 레이저를 사용하는 구역이기에 허가받지 않은 인원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헌트 교수는 “프로젝트가 이제 막 시작 단계라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가 많다”고 말했다. 공학자인 헌트 교수가 RAF에 합류한 까닭이기도 하다.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과대학 내 위치한 '해양 구름 표백' 실험실로 휴 헌트 교수가 들어가는 모습.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과대학 내 위치한 '해양 구름 표백' 실험실로 휴 헌트 교수가 들어가는 모습.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헌트 교수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실험실 안에는 각종 압력계와 파이프가 벽에 설치돼 있었다. 바닥으로부터 알루미늄 지지대로 단단하게 고정된 대포 모양의 검은색 레이저 2대는 투명한 플라스틱 원통을 양옆에서 겨누고 있었다. 헌트 교수는 “바닷물을 가열해 만든 고압의 증기가 이 통을 통과할 때 레이저 광선이 교차하며 미세한 소금 결정의 크기와 분포를 측정한다”고 설명했다. 이 장비는 그의 제자인 에드먼드 리어든 박사과정생이 개발했다.

녹아내리는 북극 해빙, “햇빛을 막아라”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과대학 내 위치한 실험실에서 휴 헌트 교수가 '해양 구름 표백' 실험 장비의 레이저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과대학 내 위치한 실험실에서 휴 헌트 교수가 '해양 구름 표백' 실험 장비의 레이저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북극 얼리기에 나선 이들이 소금 결정을 연구하는 이유는 ‘해양 구름 표백’(MCB·Marine Cloud Brightening)이라고 불리는 기술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트 교수는 “우리의 프로젝트는 지구에 내리쬐는 햇빛을 막으면 지구가 더 시원해진다는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한다”며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햇빛을 막는 양산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햇빛은 북극의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극의 해빙은 태양에너지를 반사해 수온 상승을 억제한다. 해빙의 존재 자체가 지구온난화의 여파를 막는 일종의 ‘완충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결국 해빙도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헌트 교수는 “기온 상승으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바다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로 인해 수온이 올라가게 된다”며 “결국 높아진 수온으로 또다시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과대학에서 휴 헌트 교수가 기자에게 '해양 구름 표백'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지난 7월 18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과대학에서 휴 헌트 교수가 기자에게 '해양 구름 표백'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이가람 기자

구름으로 북극 하늘에 양산 씌우기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그가 만들고자 하는 일종의 ‘북극 하늘의 양산’은 바닷물을 이용해 구름을 더 하얗게 만드는 기술을 이용한다. 바닷물을 미세입자로 만들어 안개처럼 대기 중으로 분사하면 물방울 속 작은 소금 결정들이 구름을 구성하는 입자(구름 응집핵)가 돼 구름을 더 조밀하게 만드는 원리다. 투명한 유리병에 조약돌로 채우면 빈 곳이 많이 보이지만, 여기에 모래를 추가로 넣을 경우 빛이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차게 되는 원리다. 여기서 모래 입자의 역할을 바닷물로 만든 구름 속 소금 결정이 하는 것이다. 구름을 구성하는 입자가 많아져 조밀해지면 구름이 더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이 기술을 ‘구름 표백’이라고 부른다.

지난 2021년 호주 서던크로스대 연구팀이 호주 동북부 해상에서 대기 중으로 소금 결정을 분사하며 '해상 구름 표백' 실험을 진행 중인 모습. 호주 서던크로스대

지난 2021년 호주 서던크로스대 연구팀이 호주 동북부 해상에서 대기 중으로 소금 결정을 분사하며 '해상 구름 표백' 실험을 진행 중인 모습. 호주 서던크로스대

이 기술이 지구온난화의 ‘만병통치약’인 건 아니다. 아직까지 효과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 기술의 개념은 이미 1990년에 미국의 대기 물리학자인 존 래덤이 제시했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연구는 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과 예측 분석에 국한됐다. 대규모 실험을 위한 예산 문제, 인위적 기후시스템 조절에 대한 환경단체의 우려 등으로 현장 실험이 어려웠다. 앞서 호주의 서던크로스대가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호주 동북부 해상에서 초당 수조 개의 소금 결정을 하늘로 분사하는 실험을 했지만, 소규모로 진행돼 효과를 입증할 정도는 아니었다.

북극 다시 얼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연구재단 RAF(Refreeze the Arctic Foundation)의 홈페이지 모습. 홈페이지 캡처

북극 다시 얼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연구재단 RAF(Refreeze the Arctic Foundation)의 홈페이지 모습. 홈페이지 캡처

“화석연료 줄이는 것보다 더 빠른 지구 냉각 방식 찾아야”

앞으로 RAF는 두 대학으로부터 연구비와 인력을 지원받아 2년간 실험실에서 기술 개발을 거친 뒤 2025년에 MCB 장비에 대한 검증을 진행할 계획이다. 얀 반 브뤼겔 RAF 과학·기술 이사는 “바닷물을 분사할 때 물방울의 크기가 매우 작으면서도 농도도 높아야 하기 때문에 조건을 충족하는 장비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며 “계획대로 성공한다면 10년 뒤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고 최초로 해상에서 대규모 실험을 시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환경단체의 반발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헌트 교수는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방법을 20년 전에 물었다면 화석 연료를 줄여야 한다고 답하겠지만, 이제는 시간이 없다”며 “더 빨리 지구를 냉각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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