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태평양 나누자더니, 이젠 지구 나누자는 시진핑

  • 카드 발행 일시2023.09.20

제4부: 시진핑의 과제

제2장: 미국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세계 패권을 겨냥한 미·중 갈등은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장기간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국론 통일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세계 패권을 겨냥한 미·중 갈등은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장기간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국론 통일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6억 인구를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올해 우리 철강 생산량이 400만t이다. 1억7000만 미국인이 60년 전 달성한 수치다. 우리가 앞으로 50~60년 노력해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다면 지구상에서 아예 중국이란 호적을 파버려야 한다.”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한 말이다. 마오는 58년 9월엔 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고 다시 7년을 투자해 미국을 추월하자고 중국을 다그쳤다.

그렇게 시작한 마오의 조급한 대약진(大躍進) 운동은 62년 초 2500만 명의 아사자를 내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2년 중국에서 다시 미국 추월의 기치가 올랐다. 그해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된 시진핑(習近平)이 중국몽(中國夢)을 제창하고 나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책사 왕후닝(王滬寧)이 중국 국방대학 교수 류밍푸(劉明福)가 2010년 쓴 책 『중국몽』에서 빌려온 통치 슬로건이다.

“미국 추월 못하면 지구상에서 중국 호적 파버려야”

류밍푸의 『중국몽』은 헨리 키신저가 그의 저서 『On China』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을 정도로 출판 당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골자는 ‘중국은 어떻게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것인가’다. 류밍푸는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으려면 네 가지 형태의 대국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대국→과학기술대국→군사대국→문화대국의 순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싸움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결투식이다. 이는 전쟁을 말한다. 너 죽고 나 살기 식으로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두 번째는 권투식으로 냉전을 뜻한다. 이 역시 피해가 막심해 피해야 한다. 세 번째는 육상식인데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 적합하다. 중국의 장기인 지구전(持久戰)을 펴야 한다. 류밍푸의 중국꿈은 한마디로 미국 타도의 꿈이다. 이는 시진핑의 중국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류밍푸 중국 국방대학 교수(오른쪽)가 2010년 쓴 『중국몽(中國夢)』은 출간 이후 세계가 주목하는 책이 됐다. 골자는 중국의 미국 타도 전략이다. 사진 더스톰미디어

류밍푸 중국 국방대학 교수(오른쪽)가 2010년 쓴 『중국몽(中國夢)』은 출간 이후 세계가 주목하는 책이 됐다. 골자는 중국의 미국 타도 전략이다. 사진 더스톰미디어

시진핑이 말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이라는 중국몽은 1840년 아편전쟁 이전 청(淸)이 세계 최강의 국력을 자랑했던 위치로 중국이 귀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자 건너야 할 강이 있다. 바로 미국이다. 시진핑은 집권 이후 일관되게 미국 추월의 꿈을 추진하고 있다. 꿈이 나쁠 건 없다. 그러나 그게 상대에게 악몽이란 것을 깨닫게 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 미·중 갈등은 그렇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 주도 체제는 더는 맞지 않게 된 양복”

시진핑이 미국에 던진 첫 도전장은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건설이다. 2012년 2월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 이미 제시했다. 뭐가 신형대국관계인가. 시진핑에 따르면 신형대국관계엔 네 가지 뜻이 담겼다. 서로 충돌하지 않고(不衝突) 서로 대항하지 않으며(不對抗) 상호존중(相互尊重)하고 윈윈을 추구한다(互惠共榮)는 것이다. 문제는 상호존중에 있다. 뭘 존중하자는 건가.

시진핑은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핵심 이익은 또 뭔가. 중국에 따르면 핵심 이익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 두 번째는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 세 번째는 중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규정이 자의적이란 점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중국이 자신의 핵심 이익이라고 규정하면 다른 나라는 이를 꼼짝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의 시후 국빈관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때부터 미국에 대한 중국의 말투가 “이래라 저래라” 식으로 바뀐다고 한다. 사진 신화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의 시후 국빈관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때부터 미국에 대한 중국의 말투가 “이래라 저래라” 식으로 바뀐다고 한다. 사진 신화망

사실 시진핑의 속뜻은 미국과 맞먹자(平起平坐)는 것이다. 배경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시대는 한물갔다는 중국의 인식이 깔려 있다. 오바마 정부가 받아들일 리 없다. ‘재균형 전략’을 통해 미국은 아시아에 힘을 쏟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 기간 미·중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미국 등 서방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아직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진핑의 자신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오바마와 만났을 때는 “중국은 미국이 한국에 사드(THAAD) 시스템을 배치하는 걸 반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상대하는 중국의 말투가 ‘이래라 저래라’ 식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해 주영 대사를 지낸 중국의 유명 외교관 푸잉(傅瑩)은 미국이 주도하는 체제는 “더는 맞지 않게 된 양복”이라고까지 말한다.

“태평양은 매우 커 중국과 미국 다 담을 수 있다”  

2017년 사업가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하자 중국의 배포는 더 커졌다. 그해 4월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있었던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시진핑은 “우리는 중·미 관계를 좋게 해야 할 1000가지 이유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리고 11월 베이징으로 트럼프를 초대한 뒤엔 “태평양은 매우 커 중·미 양국을 다 담을 수 있다”고 말한다. 중·미가 태평양을 반반 나눠 지배하자는 이야기다.

마침내 미국의 분노가 폭발한다. 2018년이 전환점이다. 3월 트럼프 정부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중국 상품에 관세를 대폭 올린다. 무역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7월엔 미 국회가 중국으로의 과학기술 수출을 통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8월엔 미 국방부가 중국을 ‘도전자’로 규정한다. 미 국회는 또 ‘대만여행법’을 통해 미국과 대만의 정부 관리 간 교류를 허용한다. 미·중 간 최대 민감 이슈인 대만 문제에 미국이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을 단기간에 추월하려는 마오쩌둥의 야심인 ‘대약진운동’은 중국에 2500만 명의 아사자를 내는 실패로 끝났다. 사진 아폴로망

미국을 단기간에 추월하려는 마오쩌둥의 야심인 ‘대약진운동’은 중국에 2500만 명의 아사자를 내는 실패로 끝났다. 사진 아폴로망

미국의 태도는 왜 바뀌었나. 이에 대한 중국 관방의 해석은 중국이 부상하니 미국이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 억제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미·중 갈등과 관련해 중국은 잘못이 없다는 논리다.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엘리슨도 비슷한 입장이다. 과연 그런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중국의 부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이 자신의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을 억제하려면 벌써부터 했을 것이란 분석 또한 많다.

그보다는 ‘시진핑의 중국’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진 탓이다. 왜? 중국이 어쨌길래 그런가. 2017년 10월 시진핑은 19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 연임에 성공하며 “세계에서 발전을 바라면서도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원하는 국가와 민족에게 중국 지혜와 중국 방안을 제공하겠다”고 외친다. 뭐가 중국 방안인가. 독재를 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키는 걸 말한다.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중국 경험 세계 수출에 나선 시진핑

미국기업연구소의 마이클 베클리와 할 브랜즈가 공저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Danger Zone)』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독재자들은 비록 중국의 이념을 좋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중국의 방법론만큼은 갖기를 원한다. 이런 수요를 간파한 중국의 기업들은 이미 세계 80개 이상의 국가에 감시 시스템을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구(舊)소련이 해체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소련의 역사만 끝났다”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권위적인 사회주의 체제가 민주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앞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중국의 경험을 이제 세계에 수출하겠다는 거다. 민주와 인권을 가치로 삼는 미국으로선 용납하기 어렵다. 시진핑의 중국은 그저 국력만 키우는 게 아니다. 미국과 이데올로기 경쟁을 하자고 나선 것이다. 냉전 시기 미·소(美·蘇) 간의 체제 대결과 사실상 다를 바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키는 중국방안을 세계에 전파하려고 한다. 사진은 지난 3월 중국 공산당과 세계 정당 고위층 간 토론회에 참석한 시진핑. 사진 신화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키는 중국방안을 세계에 전파하려고 한다. 사진은 지난 3월 중국 공산당과 세계 정당 고위층 간 토론회에 참석한 시진핑. 사진 신화망

미국 등 서방이 그동안 중국에 가졌던 기대, 즉 경제가 발전하면 정치 또한 민주화될 것이란 희망은 철저하게 부서졌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우며 중국의 발전이 곧 세계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은 정작 ‘괴물’을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시진핑은 2018년 3월 헌법 수정을 통해 종신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앞서 중국의 지도자들은 10년 주기로 교체됐다.

그러나 시진핑은 국가주석 3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을 없앴다. 최소 20년 이상은 집권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앞으로 오랜 기간 중국이 변할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이다. 산은 돌지 않지만 물은 돈다(山不轉水轉). 이데올로기는 산처럼 돌지 않지만, 지도자는 물처럼 돌 수 있다. 한데 시진핑의 영구 집권 야심에 따라 이제 그런 희망은 사라졌다. 이게 바로 미국이 중국 때리기 본격화에 나선 주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