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포르노 민폐남’의 죽음…동네 노인이 막걸리 부은 이유

  • 카드 발행 일시2023.09.19

9년 전에 다녀왔던 현장의 이야기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 위치한 옥탑방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작은 주방이 있고, 왼쪽 문을 열면 방 한 개, 오른쪽 문을 열면 욕실 겸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욕실이라고 해봐야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 사용할 수나 있을까 싶었다.
형편 없는 건축구조였다.

그때는 한여름이었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방 안팎으로 구더기가 쏟아져 나왔다. 집 안 곳곳에 꼬물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깥까지 기어나왔다.

이대로 모른 척,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인은 체격 좋은 5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고 했다. 좀 황당한 것이 동네 노인 한 분이 남자의 사고 소식을 듣고 집에 막걸리 한 병을 부어놨다고 했다.
왜였을까.

쏟아부은 막걸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큼한 냄새가 곳곳에 밴다. 그 쉰내에 수천, 수만의 구더기가 꼬인다. 한여름이다. 바닥을 흥건히 적신 막걸리 위에 구더기가 한 움큼씩 둥둥 떠다녔다.

우리 신입 직원 중 한 명은 그것을 보고 식혜를 쏟은 줄 알았다고 했다. 구더기가 그렇게 둥둥 떠다니는 것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발을 옮길 때마다 쩍쩍 붙고 모든 곳에 구더기가 올라왔다.

옥탑방 한쪽에는 TV와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어져 있는 벽면에 옛날 비디오 테이프와 DVD가 가득 쌓여 있었다.
대부분이 불법 동영상이었다. 조잡한 제목까지 써붙여 있었다. 그렇게 많은 분량이 한곳에 쌓여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9년 전이니까 당시만 해도 인터넷으로 그런 동영상을 볼 수는 있었을 텐데, 그때 이미 50대 중반의 이 남자는 아마도 더 예전부터 그렇게 ‘수집’해 왔던 것 같았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침대에 남은 ‘데드마스크 흔적’을 보니 어느 정도 짐작이 됐다. 남자는 침대에 걸터앉아 영상을 시청하다가 그대로 뒤로 쓰러져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다리가 놓여 있던 침대 밑부터 위까지 시신의 흔적이 매우 뚜렷했다.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들었다.

한참 현장 정리를 하다 머리를 식히려고 1층으로 내려갔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아주 왜소한 할머니 한 분께서 다가오셨다.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속이 시원해, 그래도 일이 이리 되고 나니 불쌍해서 막걸리 한 통 사다 부어줬어.”
“아…. 할머님이 막걸리를 부어놓으신 거예요?”
일이 더 귀찮게 된 것은 맞지만, 막상 할머니가 막걸리를 부어놓은 마음은 다른 의미였기에 말을 보태진 않았다.

“그래도 속이 시원해. 시원하지. 시원하고 말고.”
“뭐가 그렇게 시원하세요.”
“만날 술이나 퍼먹고, 요상한 소리를 내는 것만 보고 있었어. 소리를 얼마나 크게 틀어놓는지, 지놈도 더우니까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놓고 말야. 요상한 소리는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려대고. 이 동네 사람들은 그놈의 소리 때문에 창문도 꼭꼭 닫고 살았어. 뭐라고 말이라도 할라치면 술병을 깨고 욕지거리를 하고 말야. 경찰에 신고해도 그때뿐이고.”

그랬던 거였다.
옥탑방엔 에어컨도 없었다. 한여름에 문을 다 열어놓고 TV 볼륨을 있는 대로 높인 채로 포르노 영상을 시청한 거였다. 그리고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집 안을 정리하다 보니 술로 끼니를 채운 게 역력했다. 마땅히 출근할 데도 없었겠고, 산책은 커녕 술을 사야 할 때를 빼곤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건강이 좋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이웃 주민에게까지 큰 피해를 끼쳤다. 안타깝지만, 고인의 죽음은 이웃 사람들에게 슬픔 대신 후련함을 남겼다.

뉴스를 보며 댓글을 읽는 경우가 있다. 같은 뉴스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흉악한 범죄 뉴스에는 사형제 부활(집행)을 주장하는 댓글도 많이 달린다. 솔직히 나부터도 적법한 절차에 의한 사형에는 찬성하는 편이다. 최근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고 한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만 봐도 그렇다. 타인과 타인의 가족들에 대한 생각은 없이 자신의 욕망만 생각한 사건이었다.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고, 짐승이라 욕하자니 짐승에게조차 미안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그때 현장의 그 남자는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많은 이웃들을 힘들게 했다. 매일같이 낮과 밤을 따지지 않고 포르노 영상 소음으로 이웃을 괴롭혔다. 그랬기에 이웃들은 그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나는 고독사 현장을 가해자가 없는 모두가 피해자인 사고 현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현장은 어떤가.
이웃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시원하다, 후련하다”는 말로 마무리된다는 것.

할머니는 내가 듣건 말건 그냥 중얼거렸다.
“구더기가 너무 많네. 동네가 파리로 가득해지겠는데….”

내가 해왔던 말도 사실 선뜻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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