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선비대증도 나았다고? 맨발 걷기 숭배자와 걸어봤다

  • 카드 발행 일시2023.09.12

‘호모 트레커스’ 맨발걷기 글 싣는 순서

① 맨발 걷기 열풍, 왜 맨발에 빠졌나 
② 기자의 한 달 체험기, 맨발로 출퇴근
③ 직접 걸어본 전국 맨발 걷기 명소 10

지난달 19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대모산(293m) 북서쪽에서 구룡산(306m)으로 이어지는 언덕, 맨발로 걷는 이들이 속속 올라왔다. 기자가 언덕 벤치에 앉아 30분 동안 맨발로 걷는 사람과 신발을 신은 사람의 숫자를 세어보니 78 대 36이었다. 맨발로 걷는 이들이 두 배다. 10여 분 후 100여 명의 사람이 맨발로 우르르 몰려왔다. 대모산을 무대로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맨발운동본부)가 매주 토요일 여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40여 분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신발을 신은 사람보다 4~5배 더 많았다. 대모산이 맨발 걷기 열풍의 진원지로 불리는 이유다.

8월 19일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서 맨발걷기운동걷부가 주최한 맨발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흙길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8월 19일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서 맨발걷기운동걷부가 주최한 맨발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흙길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근처 사는데 대모산 흙길 4㎞를 하루 두세 번씩, 석 달째 걷고 있어요. 갱년기 이후 고지혈·고혈압에 우울증 약까지 먹고 있었는데, 약을 끊고 열심히 걷고 있어요. 일단 기분이 좋아요, 잠도 잘 오고요.” 평상복 차림의 60대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2주 뒤인 지난 2일 이 길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지난주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약을 먹어도 230이었는데, 약 안 먹고 180으로 떨어졌어요. 자랑하고 싶지만 혹시 다음 검사 때 결과가 어떨지 몰라 소문내지 않고 묵묵히 걸어보려고요.”

지난 4일 오후 6시, 경북 문경시 문경새재 1관문에서 2관문 오르는 길. 혼자서 걷는 이문경(71) 문경관광호텔 총지배인을 만나 해질녘까지 같이 걸었다. 그는 퇴근 후 1관문에서 교귀정(2관문 가기 전)까지 왕복 3㎞를 매일 맨발로 걷는다. 몸이 아픈 아내가 권해 두 달 전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씨가 더 열심이다.

“퇴근 후 운동 겸 소일거리로 좋아요. 새재가 맨발 명소로 소문나면서 이제 절반 정도는 신발을 신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호텔에도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묵는 사람이 상당수 늘었고요. 집이 대전이라 주말부부를 하고 있는데, 일요일까지 근무를 마치고 가서 월요일에 아내와 함께 대전 천변길을 맨발로 걸어요. 나이 든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운동으로 이만 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맨발로 걸으면 빠르게 못 가니까 대화도 많이 하고 같이 명상도 하고”

전국이 맨발 걷기에 빠졌다. 더 건강해지기 위해, 힐링을 위해 걷는다. 특히 중장년층이라면 대부분 겪고 있는 수면 장애,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 성인병 치료와 예방을 위해 걷는 이가 부쩍 늘었다.
박동창(71) 맨발걷기운동본부 회장은 “맨발 걷기의 효과를 스스로 체득하면서 열풍이 불고 있다”며 “지자체들도 앞다퉈 황톳길 조성에 나서고 있다. 7년 전부터 해온 맨발 걷기 운동이 이제야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맨발걷기운동본부는 매주 토요일 대모산 한솔공원에서 맨발 걷기 프로그램을 연다. 또 전국에 40여 개 지회를 비롯해 거점별 동호회가 있으며, 매주 맨발 걷기를 진행한다.

맨발로 산에 오르는 이들은 예전에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보는 시선은 ‘기인’ 또는 ‘이상한 사람’에 가까웠다. 등산화를 신고 걸어도 충분히 운동이 되고 기분이 좋은데, 돌과 모래·자갈 길을 굳이 맨발로 걷는다는 게 ‘유난스럽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전국 산, 둘레길, 공원의 흙길·황톳길에서 맨발로 걷는 이가 부쩍 늘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맨발로 걷게 했을까.

“자연치유, 운동 욕구 폭발”

맨발 걷기에 열심인 이들은 대부분 ‘자연치유’를 언급했다. 10여 년 전부터 맨발 걷기를 해왔고 지금은 아내, 자녀 3명과 함께 하는 임종호(58)씨는 “20대 시절부터 전립선 비대증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다가 맨발 걷기를 하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픈 고관절과 비염도 나아졌다”며 “일부에선 (맨발 걷기로 병을 고쳤다는) 대체의학이 미신이라고 하지만, (대체의학은) 인문학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적 이해란 “과학과 기술이 다가 아닌, 사람과 자연은 하나라는 천지인(天地人)의 관점에서 자연과 가까이 생활해야 건강해지고 아픈 몸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8월 25일, 인천 무의도 하나개 갯벌을 맨발로 걷는 동호인들. 김영주 기자

8월 25일, 인천 무의도 하나개 갯벌을 맨발로 걷는 동호인들. 김영주 기자

인천 무의도 하나개 갯벌에서 1주일에 세 번씩 맨발 걷기를 하는 양민승(66)씨는 자택 테라스에 황토와 자갈을 깔아 맨발 걷기 체험장을 만들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는 약물·수술 위주의 현대의학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양씨는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가다 보면 먹는 약만 늘고, 그러다 보면 없는 병도 생기게 된다. 맨발 걷기를 한 이후로 병원에 거의 가지 않는다”며 “최근 수년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할 계획이다. 맨발로만 건강을 유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아프지 않은 이들도 맨발을 선택한 이가 상당수다. 지난 9일 서울 청계산에서 만난 박모(56)씨는 “기분이 좋은 것 말고도 지압 효과, 밤에 잠을 잘 자는 건 확실하다. 산을 맨발로 오르려면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래서 운동 강도와 피로도가 등산화를 신을 때보다 두세 배는 더하다”며 “등산화를 신고 산을 걸을 때보다 확실히 몸에 좋다”고 했다.

그러나 자연치유 전문가들도 현대의학을 멀리하고 자연치유에만 빠지는 것은 경계했다.
“대체보완의학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지난 20년간 의사들은 부인했지만, 최근엔 이를 인정하는 흐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맨발로 걸으면 병이 낫는다’ 이렇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인간의 몸은 본래 항상성을 갖고 있으며, 또 자연치유력에 의해 병을 이겨낼 면역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병을 낫게 할 순 없으며, 현대의학과 같이 통합해 치료와 치유를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요즘 회자되는 통합의료다”라고 함용운 한국자연치유학회장(고려대 물리치료학과 명예교수)은 말했다.

IMF 후 확산한 등산 문화가 세분화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임종민 한신대 특수체육학과 교수는 “한국이 OECD 10위권이 되고 사회·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다양한 건강·운동법에 대한 갈증과 욕구가 커졌다. 등산·자전거 등 정통 아웃도어와 요가·필라테스 등 치유 성격의 운동이 결합해 맨발 걷기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등산문화에 대한 대안적 형태라고 보는 이도 있다. 큰 배낭과 중등산화를 신고, 여러 사람이 어울려 도시락을 먹고 산을 내려와 또 술로 뒤풀이를 하는 문화에 대한 반대급부라는 시각이다. 실제 등산에서 맨발 걷기에 나선 이들 중 상당수가 “등산을 꾸준히 했지만, 건강이 좋아지진 않았다”고 했다.

산악인 출신으로 다움숲 생태문화숲길연구소를 이끄는 박승기(67)씨는 “산 친구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론 혼자서 조용히 명상하듯 걷고 싶을 때도 있다. 등산화를 벗은 상태에서 큰 배낭을 메고 다닐 순 없으니, 자연스럽게 미니멀한 산행이 된다. 이런 조용한 산행을 원하는 이들도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자연치유에 의존하는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또 이런 욕구는 사회·경제적 배경에 의해 변하기도 한다. 한때 명상 치유가 유행했다가 최근 들어 수그러드는 게 예다. 그런 점에서 자연적인 것은 좋지만 그것이 ‘초자연적’으로 가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연택 한국관광정책연구학회장(한양대 관광학부 명예교수)은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요가·명상이 유행하다 2010년대에 피크를 이뤘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 오히려 줄었다. 자연적인 것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공허감을 느끼고 나중에 실망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라며 “맨발 걷기가 나쁠 건 없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 특히 ‘병을 고친다’는 쪽에 치우치면 오히려 반치유·반사회적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맨발 걷기 효능·효과, 어디까지일까  

대모산 맨발걷기운동본부는 삼시 세끼 하듯 “하루 세 번” 걸을 것을 권한다. 그러면 “몸의 활성산소가 중화된다”고 주장한다. 꼭 맨발이 아니더라도 하루 세 번 공원이나 숲길, 산길을 걷게 되면 기분 전환이 되고 어느 정도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 그 외 어떤 효과가 있을까.

산악인이자 족부 전문의인 정덕환 강동경희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일부에서 맨발로 걷게 되면 몸이 땅의 기(에너지)를 받아 병이 낫는다고 하는데, 의사로서 동의하기 어렵다. 막연한 얘기다. 맨발로 걷게 되면 지압, 발바닥 내재근을 단련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 발가락에도 미세 관절이 있는데, 신발 속에 묶여 있던 이런 관절의 움직임이 좋아질 순 있다”고 했다. 단점도 있다. “신발의 가장 큰 기능은 발 보호와 접지력 향상이다. 신발을 벗으면 이런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또 고르지 않은 산길을 걸을 때는 시선이 땅을 향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시야가 좁아지고 목과 허리도 구부정하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