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어느 봄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별관 5층 복도에 건장한 남성 13명이 줄을 지어 섰다. 누가 봐도 조직폭력배인 남성들은 굳은 표정을 한 채 말이 없었다. 지루함과 답답함이 뒤섞인 한숨 소리만 가끔 들렸다.
자백할 사람 이쪽 방으로!
검찰 수사관 한 명이 나타나 낮고 굵은 목소리로 어색한 적막을 깼다. 검찰청 복도라는 공간이 주는 위압감이 남성들을 주눅들게 했다. 순순히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될 거란 설명은 필요없었다.
남성들은 ‘순한 양’이 됐다. 경조사 등 각종 모임과 자리에서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도열하는 게 버릇이 된 이들답게 민첩하게 줄을 만들었다. 줄 맨 앞엔 수사관이 지목한 ‘진실의 방’이 있었다. 그렇게 이들은 자백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남성들은 2020년 10월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난동을 피운 ‘수노아파’ 조직원들이다. 수노아파는 전남 목포에 기반을 둔 폭력집단이다. 이들은 투자 피해에 대한 항의를 명분으로 배상윤(56, 해외 도피 중) KH그룹 회장을 만나기 위해 호텔에서 난동을 피우며 다른 손님들을 위협했다. 당시 그랜드하얏트의 소유권은 KH그룹에 있었다.
검찰이 수노아파 수사에 들어간 건 지난해 7월.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은 최근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 한복판, 그것도 내로라하는 고급 호텔에서 조폭들이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깰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고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