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돌밭에 생명 품었다, 강릉 안반덕 배추의 도도함

  • 카드 발행 일시2023.09.11

비 오는 날 강릉 안반덕에 올랐습니다.

이 밭 저 밭 짙푸른 배추가 한껏 물기를 머금었습니다.
머금은 물기로 배추가 한층 더 싱그러워 보였습니다.

2006년 비 온 다음 날 안반덕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곳은 온 산 뒤덮은 안개의 땅이었습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안개가 물러나기를 한참 기다렸습니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안개가 아주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안개가 서서히 물러나는 만큼 점차 드러나는 배추밭,
마치 호롱불이 차례로 켜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배추가 줄지어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이 꼭 그랬습니다.

그 풍경이 다시금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비 온 다음 날 새벽 안반덕에 다시 올랐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안반덕엔 안개 한 점 없었습니다.
싱그러운 배추밭 너머 먼발치 동해의 붉은 하늘만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안개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