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위안부 속임수 내가 봤다” 日지도층 앞 작심 연설 (25)

  • 카드 발행 일시2023.09.08

생전의 JP가 중앙일보에 현대사 증언을 연재했던 201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었다. 1965년 양국 수교는 곡절과 파란의 역사였다. 김종필(JP) 중앙정보부장은 61년 이케다 총리와 비밀회동, 62년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돌파구를 마련한다. JP는 한·일 수교에 담긴 협력과 우호를 양국 전중(戰中)세대의 작품으로 회고한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등 일본 전후(戰後) 지도층이 전중세대의 고뇌와 결단에 어이없는 상처를 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JP는 2005년 양국 수교 40주년 때 이야기로 증언을 시작한다. 그는 격정적으로 과거를 회고하면서 오늘을 돌파할 경륜과 지혜를 내놓는다.

2005년 6월 3일 도쿄 게이단렌(經團連)회관의 강연이 떠오른다. 그 행사는 일본의 정·재계 인사, 정부의 국장급 이상 관료, 언론사 대표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 초청강연’이었다.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讀賣) 회장이 마련하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나와 함께 초청된 자리다. 나는 현역 정치인일 때 묻어두었던 가슴속 얘기를 40분간 쏟아냈다. 전후세대가 모르는 과거사를 얘기해 줬다.

“올해(※2005년) 일본인들은 일·러 전쟁 승리 10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그 승리가 식민지로 직진(直進)하는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외부의 지배와 침략을 당해 본 경험이 드물기 때문에, 특히 지도층 인사들은 강자·지배자·가해자의 시각과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중들은 외교적 수사를 억제하고 역사 인식으로 바로 들어간 내 얘기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여러분의 영웅이겠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침략의 발상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에겐 메이지 유신의 원훈(元勳)이지만 한국인에겐 침략의 원흉(元兇)으로 불립니다. 일본과 아시아 국가 사이엔 국경을 넘으면 영웅이 역도(逆徒)가 되고 역도가 영웅이 되는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용어사전🔎 현대사 소사전: 메이지유신(明治維新·1868년)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將軍) 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천황) 복고를 이룩한 변혁. 메이지 정권은 학제·징병령·조세 개정 등 개혁을 추진하고, 서구 선진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 근대국가로 탈바꿈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의 성공으로 열강의 반열에 올라섰고, 중국(청나라)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차례로 승리했다.

장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올해는 고종의 황후인 민비가 일본의 미우라 공사 일당에 의해 참살된 지 110년 되는 해입니다. 이런 일이 일본의 황거(皇居)에서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시면 한국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역사적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설을 마쳤는데 행사장은 조용했다. 충격을 받은 듯 모두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현역에서 정치를 할 때 ‘언젠가는 가슴은 아프겠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직설법으로 이런 얘기를 해야겠다’는 뜻을 품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해야 할 때를 가려야 하는 법이다. 이 시점은 내가 정계를 떠난 지 얼마 안 됐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일본의 지도층이어서 한마디하면 일반 국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때가 왔다는 생각으로 마음먹고 연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