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간첩 황태성’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미묘했다. 김일성의 밀사로 자처한 황태성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친형 친구다. 박 의장과 그의 조카사위인 정보부장 김종필을 만나려고 시도했다. 그 때문에 미국은 박 의장에게 의심 섞인 눈초리를 보냈다. 서울 주재 미국 정보기관들은 황태성을 직접 신문(訊問)하려 했고, 그 문제로 양국 정보기관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황태성 체포 사실을 박정희 의장에게 보고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국장 피어 드 실바(Peer de Silva)가 나를 찾아왔다. 이북에서 내려온 황태성을 잡아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드 실바는 “우리 CIA가 신문해야 하니 황태성의 신병(身柄)을 넘겨 달라”고 내게 요구했다. 나는 “우리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 끝나면 그때 조사하라”고 거절했다.
20여 일쯤 지나 드 실바가 다시 찾아와 같은 요구를 했다. 거듭된 요구에 나는 황태성을 미국 측에 내줬다. 대신 “신문이 끝나는 대로 우리한테 돌려보내라”고 했다. 드 실바는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하고 황태성을 데리고 갔다. 내가 중앙정보부장을 그만둔 뒤에야(1963년 1월) 미국이 황태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항간의 얘기는 틀린 것이다.
미국은 박정희 의장의 과거 좌익 경력을 의심했다. 황태성이 남한에 내려온 것도 사전에 내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겼고, 황태성을 통해 박 의장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한 것이었다. 박 의장은 사상적으로 아무 문제될 게 없었으니 CIA가 정체를 알아낼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황태성을 처음 붙잡았을 때부터 빨리 재판절차를 마치고 간첩죄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이 문제로 곤란한 처지에 놓일지도 모르는 박 의장을 위해서였다. 그땐 툭하면 박 의장을 사상적으로 음해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가 황태성을 간첩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긴 건 61년 12월 1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