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전력자가 남한 쥐었다” 김일성의 ‘박정희 공작’ 오판 (23)

  • 카드 발행 일시2023.09.04

1961년 10월 20일 중앙정보부는 서울에 잠입한 전 북한 무역상 부상(副相·차관급) 황태성(黃泰成)을 연행했다. 황태성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친형과 친구다. 그는 박정희 의장과 김종필(JP) 중앙정보부장, 두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며칠 뒤 JP는 박 의장을 찾아가 ‘거물 간첩(間諜) 황태성 검거’ 내용을 처음 보고한다.

황태성이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이북에서 내려왔다는 보고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박 의장이 물었다.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이야.”

나는 힘주어 대답했다. “조사할 거 조사하고 나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두고두고 화근거리가 됩니다.” “아…, 어떻게.” “법적 절차는 다 밟습니다. 재판을 해야 하니까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제가 알아서 조치할 테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이 말을 듣고서야 박 의장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말이 없었다. 혼자 마음속에서 주고받고 하면서 고민을 하는 듯했다. 어려서부터 ‘형님, 형님’ 하며 황태성을 따라다녔는데, 그 흉중(胸中)에 물결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 의장은 다른 말 없이 “그래, 잘 좀 취조해 봐”라고 말했다. 황태성 처리에 대해 박정희 의장이 내게 내린 지시는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