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날 못 잊게 하겠다” 전 남친의 충격적인 유서

  • 카드 발행 일시2023.06.27

15년 넘게 지난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워낙 충격적인 현장이었다. 내가 장례지도사를 그만두고 유품정리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당시 초보 유품정리사로서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신에서 나는 냄새, 시취(屍臭) 제거에 맞는 약을 찾아 국내 모든 업체를 찾아다녔다. 생각과 달리 화학약품으로 시취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민간요법까지 수소문한 끝에 어느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쑥을 구해다 태워보기도 했다. 그렇게 허둥대던 초짜 시절, 너무나 충격적인 사연에 말문을 잃었다.

나이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20대 여성의 의뢰를 받고 찾아간 곳은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원룸이었다. 드물게 추웠던 겨울, 모처럼 긴 설 연휴가 지나고 나서였다. 의뢰인은 설 연휴가 길기도 한 참에 연차까지 내서 일주일 이상 집을 비웠다고 한다. 명절 전에 그 이야기를 들은 예전 남자친구가 그동안 방만 좀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추운 겨울에 갈 곳, 묵을 곳도 없다고 매달리는 전 남친의 애원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어차피 집에 함께 있을 것도 아닌지라 옛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휴가 동안만 집을 내주기로 했다고 한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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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취직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정신 없었다. 학생 때와는 다른 사회생활, 배울 것도 눈치 볼 것도 많은 직장 막내였다. 당연히 매일매일 녹초가 됐지만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잠도 설쳐, 온갖 신경이 예민해졌을 때다. 대학 때부터 사귄 남자친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여전히 취업준비생이었다.

회사 일도 연애도 어느 하나 제대로 못 챙긴 채 우왕좌왕하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고 했다. 여자는 자기 나름대로 그런 자책에 빠져있는데, 남자는 되레 ‘혼자 취업 성공했다고 유세 부리냐’는 식으로 자기 상처를 공격적으로 드러내기 일쑤였다. 잦은 다툼 끝에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했다. 남자친구도 동의한 이별이었다.

하지만 결별 이후로도 전 남자친구는 수시로 연락을 해왔다. 수신거부를 할까 생각했지만 마음이 약했다. 모질게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던 중에, 명절 동안 머물 곳이 없어 방만 좀 빌려 달라는 남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방을 내주고 여자는 부모님 집에 내려가 모처럼의 긴 휴식을 취했다.

연휴가 끝날 무렵 전 남자친구에게 집에서 나갔는지 물어보려 연락했지만 답이 없었다. 더 이상 마주칠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해 더는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넘어 돌아온 집, 남자가 방을 비웠을 거라 생각하고 현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여자는 순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