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일이다. ‘한국경제사’ 수업 시간에 갑자기 ‘제주에는 왜 대문이 없는가’를 놓고 학생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제주도 출신인 난 “애초부터 거지와 도둑이 없는 믿고 사는 사회여서 대문이 필요 없었다”고 당연한 듯 말했다.
즉각 반론이 제기됐다. 학과 선배 중 한 명이 “그보다 훔쳐갈 물건이 없었다. 도둑질만 해서는 굶어죽기 알맞다. 그래서 대문이 필요 없었다. 심지어 대문을 마련할 형편도 못 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저 형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유광호 교수님이 그 상황을 정리해 주지 않으셨다면, 난 제주도민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끝까지 ‘삼무 정신’ 홍보대사 역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논쟁을 끌고 가려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