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세개 걸린 집 가지 말라, 대문 없는 제주 ‘정낭’의 비밀

  • 카드 발행 일시2023.06.16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일이다. ‘한국경제사’ 수업 시간에 갑자기 ‘제주에는 왜 대문이 없는가’를 놓고 학생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제주도 출신인 난 “애초부터 거지와 도둑이 없는 믿고 사는 사회여서 대문이 필요 없었다”고 당연한 듯 말했다.

즉각 반론이 제기됐다. 학과 선배 중 한 명이 “그보다 훔쳐갈 물건이 없었다. 도둑질만 해서는 굶어죽기 알맞다. 그래서 대문이 필요 없었다. 심지어 대문을 마련할 형편도 못 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저 형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유광호 교수님이 그 상황을 정리해 주지 않으셨다면, 난 제주도민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끝까지 ‘삼무 정신’ 홍보대사 역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논쟁을 끌고 가려 했을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성읍민속마을의 '정낭'. 나무 개수에 따라 집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리는 대문 역할을 했다. 나무 두 개가 내려 있으면 주인이 잠깐 외출, 한 개만 내려 있으면 다소 장시간 외출, 세 개가 다 걸쳐 있으면 종일 출타 중이라는 신호다. 최충일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성읍민속마을의 '정낭'. 나무 개수에 따라 집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리는 대문 역할을 했다. 나무 두 개가 내려 있으면 주인이 잠깐 외출, 한 개만 내려 있으면 다소 장시간 외출, 세 개가 다 걸쳐 있으면 종일 출타 중이라는 신호다. 최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