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토요일인데도 새벽같이 일어나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제주시 노형동 한라수목원으로 달려갔다. 한라수목원 개원 30주년을 맞아 마련한 ‘제주 자생식물 나눠주기’ 행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순식간에 동난 구상나무
현장에선 한라수목원이 기른 구상나무·주목·눈향나무·백당나무 등 10종 3000그루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모두 한라산과 오름에 서식하는 자생식물이다. 다른 한라산 자생식물도 그렇지만 특히 구상나무와 주목은 구하기 어렵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라산 구상나무. 은초록빛 잎이 반짝인다. 최충일 기자
한라수목원은 해마다 나무 나눠주기 행사를 연다. 행사를 여는 가장 큰 목적은 한라산 자생 식물 보존이다. 많은 사람이 자생식물을 제주 곳곳에서 키우면 개체 수를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나무를 나눠주려고 한다. 특히 구상나무는 보존 대상 1호다. 나도 이런 의미 있는 일에 함께한 제주 사람이다. 이걸 굳이 표현하자면 ‘책임과 연대’라고 해야 하나?

구상나무가 한라산 해발 1700m 고지 영실 구상나무림에 우뚝 서 있다. 최충일 기자
30년간 한라산 구상나무만 연구했다는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고정군(59·한라산연구부장) 박사는 “한라산 중산 간지에 시험림(試驗林) 공간을 확보해 어린 구상나무 숲을 만들고 있다”며 “제주 자생지에서 구상나무가 멸종할 것에 대비해 유전적 정보를 확보하자는 차원”이라고 했다.
이날 한라수목원에서 오전 7시30분부터 11시까지 1인당 3그루까지 나무를 나눠줬다. 제주도 전역에서 이른 아침부터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바람에 나무는 순식간에 동났다. 그야말로 선착순, 조기 마감이었다. 이날 행사장에 온 사람은 대부분 나처럼 구상나무를 갖고 싶어 했다. 구상나무가 제주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여서다. 한라산을 한 번이라도 올라 본 사람이라면 구상나무가 그려내는 사계절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