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꼼짝하기 싫다는 아내를 간신히 설득해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 해안으로 향했다. 남방큰돌고래가 나타나는 곳이다. 50대 중반 중등 교사인 아내는 지난해 6월 여성 질환 관련 수술을 받은 뒤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불면증·만성 피로 증세에다 불안·짜증·분노 등 감정에 쉽게 휘둘린다. 이 때문에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일 때가 많다. 소파에서 포테이토 칩스를 먹으며 뒹굴뒹굴하고 TV를 즐기는 생활 습관이 배어 있다는 의미다.
대정읍 노을 해안, ‘남방큰돌고래 성지’

지난달 제주 노을해안로에서 포착된 남방큰돌고래 무리. 사진 진관훈
남방큰돌고래가 노을 해안에 나타나는 시간대는 대략 정해져 있다. 오전 10~12시와 오후 3~5시 등 하루 두 차례다. 제주 사람에게 이곳은 ‘남방큰돌고래 멍’하며 힐링하는 성지(聖地)로 이름나 있다. 이날도 자동차 50여 대가 주차해 있고, 관광객 100여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돌고래가 해수면 위로 나오기만 기다리는 ‘돌고래 멍’을 몇 시간째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고 갯바위 끝까지 가서 망원경으로 바다를 관찰하거나 드론을 띄우는 ‘열성팬’도 보였다.
이날은 오후 들어 다행히 구름이 걷히고 쾌청해졌다. 이 마을 한 어르신(78)은 “날씨가 좋아 틀림없이 남방큰돌고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에 아내 표정이 조금 밝아지는 듯했다. 그 어르신은 틈만 나면 이곳에 와서 한 시간 이상 ‘돌고래 멍’하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맨눈으로도 식별이 가능한 가까운 곳에 남방큰돌고래 수십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난치듯 솟아오르며 물장구치자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 찍기에 바빴다. “와~몇 마리야?” 하는 탄성도 쏟아졌다. 남방큰돌고래가 머리를 들고 높이 점프할라치면 “어머 저것 좀 봐, 너무 귀여워~”하며 즐거워했다.

제주시 대정읍 노을 해안에서 관광객들이 돌고래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이른바 ‘돌고래 멍’을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