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흔적도 딸 흔적도…감쪽같이 사라진 모녀의 집

  • 카드 발행 일시2023.04.11

집주인의 의뢰로 다녀온 곳은 39평 크기의 아파트였다. 세입자인 엄마와 딸이 거주했고, 엄마가 고독사했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고, 그 외 가족에 대해선 알 길이 없어 집주인이 내게 의뢰한 것이었다.

모녀는 이 집에 월세로 10년 이상 거주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살던 모녀에게 이상이 감지된 건 약 1년 전부터였다.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세입자 중 엄마는 암 투병 중이어서 생활이 어려워졌다는 사정을 집주인에게 털어놓았단다. 어릴 때 이사온 딸이 성인 나이가 되었으니 모녀와 집주인의 인연은 길고 길다. 집주인은 기다렸다. 그러나 결국 인연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꽤 넓은 집이었고, 오랫동안 살았던 집이기에 짐이 많았다. 꼬박 이틀을 작업해야 했다. 폐기물 차량과 사다리차를 미리 예약해 두었고, 유품 정리와 포장으로 첫날 작업을 시작했다.

집은 전기도 수도도 끊어진 상태였다. 집안에 물이 채워진 페트병이 굉장히 많아서 의아했는데, 외부에서 물을 담아와 사용한 듯했다. 단수로 인해 변기 사용도 어려웠는지 변기는 용변으로 막혀 있었다. 화장실에선 시취(屍臭)보다 고약하고 지독한 지린내가 진동했다. 물도 전기도 없이 어떻게 긴 겨울을 살아냈는지 모르겠다. 암 투병까지 했다고 했는데 말이다.

서둘러 유품들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고인이 된 엄마는 1969년생이었다. 딸은 99년생이었다. 정리를 하다 보니 배우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인 2011년 남편과 이혼했다. 이혼 후 딸과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나 보다. 그리고 또 다른 서류들이 나타났다. 고인의 모친과 관련된 것이었다. 고인은 모친의 대출을 위해 보증을 섰다. 약 6000만원을 저축은행 등 여러 곳에서 대출 받았다는 내용의 서류였다. 그리고 고인에게 암이 발병한 모양이었다, 2010년의 일이었다. 고인은 일흔에 가까운 모친의 빚과 투병 생활을 짊어져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