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미쳐있던 아빠의 죽음…홀로 남아 씁쓸한 ‘장영실상’

  • 카드 발행 일시2023.03.07

재작년 3월. 파릇파릇한 새싹은 돋았지만 아직은 밤공기가 차가웠던 계절. 찾아간 현장은 가산동의 작은 원룸이었다.

원룸 중에서도 소형 평수, 싱글침대 하나 놓으면 간신히 걸어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작은 방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집 안이 들어왔고, 절로 한숨부터 나왔다.

사고 현장은 화장실인 듯했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는데, 고인은 화장실에서 나오다 변을 당한 것으로 짐작됐다. 화장실과 방 사이에 시신이 걸쳐 있던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발생하는 사고는 크게 두 가지로 추려진다. 기립성 저혈압 또는 미끄러져 발생하는 낙상이다. 화장실 앞에 발매트를 놓지 않고 생활하는 경우 발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나오다 미끄러져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별것 아니라고 여긴 일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지고 생과 사를 결정짓는다.

집 안은 말 그대로 쓰레기집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과 쓰레기가 뒤엉켜 방치돼 있었고, 술병들이 집 안에 굴러다녔다.

현장에서 비슷한 광경을 늘 보지만 이날은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컴퓨터를 포함한 수많은 전자기기였다. 이쪽 분야의 지식이 전무해 나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엇을 위한 기기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청소를 시작하기 전 의뢰인에게 연락을 했다. 집주인이다.

집주인에 따르면 고인에겐 딸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연락을 단절한 채 살았고, 이번 사고로 인해 경찰이 수소문 끝에 딸을 찾았다고 했다. 고인의 시신은 그렇게 딸에게 인계됐다. 유족은 남아 있는 보증금으로 현장을 수습해 달라고 했고, 집주인은 내게 청소를 의뢰했다. 나에게 집주인이 청소를 의뢰하게 된 경위다.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고, 현장 관련 수습은 남아 있는 보증금으로 처리하라고 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