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토하면서도 “아빤 잘 있어”…자식이 크자 삶을 접었다

  • 카드 발행 일시2023.02.28

아스팔트가 끓어오를 정도로 더위가 한창인 여름, 젊은 청년의 의뢰가 들어왔다.

고독사 현장에선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고 청소할 수 없다. 작업하고 나면 속옷까지 땀에 흠뻑 젖곤 하는데, 특히 한여름 고독사 청소를 마친 뒤엔 귓속에서까지 악취가 난다. 씻어도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시취(屍臭) 때문에 씻는 시간이 두 배로 걸린다.

이번 의뢰자는 고인의 아들이었다. 이제 스무 살. 한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는 장남이었다.

고인은 이혼 뒤 혼자 남매를 양육했다. 그는 덤프트럭 운전기사였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고,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아이들을 키워내려면 아버지에겐 돈이 필요했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다. 함께해 주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이들은 잘 자라 주었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 각각 취업해 독립했다. 아버지의 어깨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나 싶은 그때, 불운은 찾아왔다. 그는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고인은 다른 선택을 했다. 남매를 무사히 키워낸 것만으로 자신의 삶이 충분하다 생각했다.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병을 방치했다. 술도 마셨다. 집안 곳곳에서 각혈의 흔적이 보였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매는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기에도 버거웠다. 부모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의 몸과 마음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줄은 몰랐다. 통화할 때마다 아버지는 잘 있다고 했고, 아이들은 믿었다.

고인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선택했고,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 누구도 탓할 수는 없다.

고인이 살던 곳은 임대아파트였다. 고인은 병이 깊어져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했다. 병이 완전히 자신의 몸을 잠식하기 전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화장실 문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줄. 그리고 그 옆에 놓여진 술잔. 화장실 문에 기대어 마지막 한 잔을 마셨나 보다.

관련기사

아이들과 함께 사는 동안 발병했다면 고인은 삶의 의지를 가졌을까.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자신만의 삶을 꿈꿨을까. 술이 먼저였을까, 병이 먼저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