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경선이 진행되던 2019년 8월 9일. 엘리자베스 워런과 카멀라 해리스가 오전 11시 이후 30분 간격으로 비슷한 트윗을 띄웠다. 5년 전 퍼거슨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며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에 맞서자는 내용이다.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을 쏴 죽였다는 단순 구조로 전파된 퍼거슨 사건. 진보 진영엔 정치적으로 유리한 소재였다. 사건의 진상은 흑인 절도 용의자가 백인 경관의 총을 빼앗으려고 덤벼들다 사살당한 것이었다.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시절이었으니 오죽 철저히 조사했겠나. 그래도 증거를 움직일 순 없었다. 경관은 처벌받지 않았다.
팩트체크 단체가 워런과 해리스의 트윗을 오류로 판정하며 수정을 요청했으나 두 후보는 외면했다. 진보층을 의식한 선명성 경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이 사건을 정치화하려는 진영엔 진상이 뭐건 중요치 않았다. 백인 경관이 쏘고, 흑인이 죽었다는 것만 중요했다.
흑인이 경찰과 맞닥뜨리는 장면에선 어김없이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작동한다. 경찰이 유독 흑인을 거칠게 다루고, 때론 아무렇지도 않게 총으로 쏴 죽인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1992년 LA 폭동의 단초를 제공한 로드니 킹 구타 사건, 2014년 퍼거슨 사건, 그리고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따금 톱뉴스에 오른 사건들의 잔영 탓일까, 흑인은 백인 경찰에게 얻어터지고 맞아 죽는 무고한 피해자라는 관념이 굳어졌다.

2014년 11월 24일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은 퍼거슨시에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숨지게 한 백인 경찰 대런 월슨에게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정당방위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는 경찰 측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후 흑인 사회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상점 유리창을 깨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사진은 불기소 결정이 난 날 퍼거슨시 경찰서 인근에서 벌어진 시위. AP=연합뉴스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인화점이 매우 낮은 가연성 물질이 잔뜩 깔려 있는 셈이다. 정치인들에겐 기름 붓고 불붙여 선거철 땔감으로 쓰기 딱 좋은 재료다. 구조적 인종차별과 무책임한 공권력, 이 얼마나 유권자들을 자극하기 쉬운 주제인가. 워런과 해리스 역시 이를 놓치지 않고 유세에 써먹었다.
그럼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흑인은 한 해에 몇 명이나 될까. 2021년 학자들의 비영리단체 SRC(Skeptic Research Center)가 그 응답을 정치 성향에 따라 분류했다. ‘매우 진보적’인 응답자의 22.5%가 매년 1만 명 이상의 흑인이 경찰 손에 죽어 나간다고 답했다. 또 31.4%가 약 1000명, 30.7%가 약 100명이라고 했다. ‘진보적’인 응답자 가운데선 38.8%가 약 100명, 이어 26.7%가 약 1000명이라고 각각 답했다. 이 정도면 대학살 수준 아닌가. 보수층에선 그 숫자가 확 줄었다. ‘보수적’ 또는 ‘매우 보수적’인 응답자 군에선 각각 46%가 약 10명이라고 답했다.
FBI 통계에 근거한 워싱턴포스트의 범죄 DB에 따르면 정답은 2019년 13명이다. 그 뒤론 20명 내외로 늘었다고 한다. 정치 성향에 따른 통념과 팩트 사이의 격차는 마치 별과 별 사이의 공간만큼이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