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전용

만화 대신 드라마만 봐요…아이는 엄마가 그리웠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12 06:00

부모 때리고 밥상 엎는 아이, 문제가 뭘까요?
생후 23개월차에 접어든 소원(가명)이 엄마입니다. 저의 고민은 두 가지인데요. 아이가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것과 말을 전혀 못하는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맞벌이에요. 저는 아이가 태어난 지 50일쯤부터 주 1일 형태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양육을 분담해주기로 하면서 10개월 이후부턴 근무 스케줄을 주 3일로 늘렸어요.
주중에는 아이가 저희 집과 친가, 외가에서 번갈아 지냅니다. 주말엔 제가 주로 돌보고요. 아이 아빠는 주 1회 휴무인데, 쉬는 날엔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 애씁니다. 소원이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사람은 접니다. 그런데 소원이는 외할머니를 제일 따라요. 외할머니가 갓난 아이 때부터 자주 봐줘서 그런 것 같아요.
아이의 폭력성은 20개월부터 드러났습니다. 특히 무언가 주장할 때 심해져요. 마음에 안 들면 밥 먹다 식판을 뒤엎기도 하고요. 훈육하면 물건을 집어 던집니다. 저와 남편을 발로 차고 깨물기도 해요. 아직 말이 트이지 않아 답답해서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 명이 키우다보니 훈육 방식에는 일관성이 없는 편이에요. 아이가 투정을 부려도 저와 남편은 받아주지 않아요. 울다 지칠 때까지 지켜봅니다. 하지만 외가와 친가에선 무조건 안아주고 달래줘요. 아직 어린 아이인데 강하게 통제해야 하는지, 타이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갈피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소원이가 기분 조절을 못 하고 말이 느린 건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어요. 주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뇌 발달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소원이 사연을 들은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담 신청은 소원이 어머니가 했지만, 사정상 실제 상담에는 아버지 방용진(가명)씨가 참석하셨는데요.

신의진 교수는 방용진씨와의 상담에서 애착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신의진 교수가 보기에 소원이는 전형적인 애착 장애를 겪고 있었거든요. 소원이는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대신 드라마만 찾는다고 해요.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봤던 드라마를 기억하고, 틀어달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언어 발달이 늦는 것도 애착 관계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신의진 교수는 “애착 관계는 사회성과 정서 발달에 중요하고, 언어 발달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아이 뇌 발달에 가장 좋은 비타민은 건강한 애착 관계”라고 강조했습니다.

방용진씨와 신의진 교수의 상담은 지난달 4일 줌을 통해 30분간 진행됐습니다. 건강한 애착 관계를 위해선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는 것도 중요한데요. 아이 눈높이에 맞게 놀아주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번 상담을 눈여겨 봐주세요.

아이는 왜 만화 대신 드라마만 봤을까 

신) 소원이가 아직 말을 잘 못한다고요?

방) 말이 느린 편이에요. ‘엄마’, ‘아빠’도 이제 겨우 말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켜요.

신) 최근 기분 조절도 잘 안 못한다고 하셨는데요. 원래는 어떤 성격이었나요?

방) 얌전한 편이었어요. 유난스럽지도 않고요. 그런데 올해 초부터 신경질적인 반응을 자주 보여요. 마음에 안 들면 손에 잡히는 걸 집어 던집니다.

신) 아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원인에 대해 고민해보셨나요?

방) 이 시기에 아이의 주장이 강해진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안 되니 답답해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아이가 이 사람 저 사람 손에서 키워지니까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신) 부모님과 친가·외가의 육아 스타일이 각각 다르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아이를 보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방) 아무래도 할머니들은 ‘오냐, 오냐’하시는 편이에요. 전 퇴근하면 책을 좀 읽어주려고 해요. 아이에게 읽고 싶은 책 가져오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한 5~10분 정도 읽다 보면 아이가 싫증 내더라고요. 텔레비전 틀어달라고 졸라서 보게 해주면 좋아하고요.

신) 할머니들도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많이 보여주시나요?

방) 아이가 원하면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로 영상을 틀어주시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보여주는 정도는 아니고요.

신) 하루 몇 시간 정도 보나요?

방) 제가 집에 있을 땐 하루 2시간 정도 보는 거 같아요. 내리 2시간을 보는 건 아니고요. 좀 보다가 싫증 나면 나가서 놀고, 그러다 보고 싶으면 다시 와서 보고 그럽니다.

신)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하나요?

방) 만화는 잘 안 봅니다. 아이 엄마가 보던 드라마에 익숙해졌는지, 그걸 틀어달라고 해요.

신) 아이가 드라마 내용을 이해하나요?

방) 이해하는 것 같진 않아요. 드라마에서 아기가 등장하거나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좋아해요. 만화를 틀어주기도 했는데 안 보더라고요.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순한 아이, 자랑 말고 걱정해야 합니다     

신) 아이가 제때 목을 가누고, 섰나요?

방) 걷는 게 좀 느렸어요.

신) 얼마나 늦었나요?

방) 16~17개월 때 걸었습니다.

신) 왜 이렇게 많이 늦었을까요?

방) 아이가 걸으려고 한두 달 정도는 혼자 노력하더라고요. 근데 발을 떼기 겁내하는 것 같았어요.

신) 그렇구나. 보통 운동 발달이 늦으면 앉는 것도, 서는 것도 다 늦거든요. 다른 건 다 제때 했는데 유독 걸음 떼는 걸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겁이 많은 겁니다. 그런데요 아버님, 겁이 많은 아이가 말도 늦다는 거 아셨나요?

방) 그런가요? 전혀 몰랐습니다.

신) 아이들이 입을 뗄 땐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른처럼 발음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거든요. 어른을 보면서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흉내내야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소원이는 겁이 많은 편이잖아요. 그래서 상대의 입을 보고 정교하게 따라 말하는 걸 힘들어하는 겁니다. 겁내는 거죠.

방)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 일단 병원에 가서 언어 평가를 반드시 받아보세요. 소원이 문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언어 발달 지연 같거든요. 의사소통하고 싶어도 시원하게 내뱉지 못하면 짜증이 나겠죠.

방) 그럴 수 있겠네요.

신) 그다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건 놀이입니다. 말이 어느 날 느닷없이 트이는 게 아닙니다. 비언어적 소통부터 하는 거예요. 상대와 눈을 맞추고 같이 놀면서 감정 교환을 하면서 소통하고 싶은 의지가 커집니다. 그래야 말문이 트여요. 그런데 소원이는 그런 의지가 강한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어렸을 때 순했다고 하셨잖아요. 부모님들은 아이가 순하면 좋다고 하시는데 오히려 걱정해야 해요. 아이들은 절대 순할 수가 없거든요. 자꾸 요구하게 돼 있어요. 어릴 때 귀찮게 굴지 않는 아이들은 성격이 좋다기보다 의사소통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고 봐야 합니다. 의사소통하고 싶은 의지가 강해지려면 건강한 애착 관계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방)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드라마 틀어달란 아이, 애착 문제였다 

신) 어머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읽고 또 아버님과 상담을 하면서 저는 소원이의 애착 발달이 걱정됩니다.

방) 애착 발달이요? 저희 부부와 양가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사랑을 많이 준다고 생각하는데요.

신) 애착 관계는 그렇게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검색해보시면 아이 뇌 발달에 대한 서적이나 유튜브 영상을 많이 찾을 수 있어요. 전문가만큼은 아니더라도 부모라면 생후 몇 개월쯤엔 어느 정도의 발달 등 상식적인 수준의 정보는 알고 계셔야 해요. 정보가 아예 없으면 순했던 우리 아이가 왜 요새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변했는지, 또래보다 왜 언어 발달이 늦는지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아이가 만화 대신 드라마를 보잖아요. 이해도 안 가는 내용이 재미있을까요? 아니죠, 엄마랑 같이 있을 때 하던 거라 아이가 틀어달라는 겁니다. 전형적인 애착 문제죠.

방) 마음이 안 좋네요. 저희 부부가 아이 뇌 발달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 엄마와 함께 공부해야겠네요.

신) 좋은 태도입니다. 애착 관계에 관해 설명 하자면요, 아이가 어렸을 때 즉 세 돌까지는 주 양육자를 한두 명으로 한정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끈끈한 애착 관계가 만들어지거든요. 근데 소원이는 애착 대상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집에 있다가 친가·외가 할머니들이 맡았다가 어린이집도 갔다가 했으니까요. 소원이가 외할머니를 제일 따른다고 했죠? 아마 외할머니가 아이와 정서적인 교류를 가장 잘하셨던 것 같아요.

방) 네, 외할머니가 아이 어렸을 때부터 자주 돌봐주셨어요.

신) 아이 입장에서 외할머니가 첫 번째 애착 대상인 거죠. 하지만 아이가 여러 명의 손을 거치면서 지속해서 애착 관계를 쌓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아이가 주 양육자와 편안한 애착 관계를 만들어야 비언어적 소통을 담당하는 정서와 사회성 뇌가 발달합니다. 정서와 사회성이 발달해야 언어도 잘하게 되는 거고요.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관련기사

책 읽어준다고요? 몸으로 놀아주세요 

방) 지금이라도 저희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신) 다행히 세 돌 전까진 아이의 뇌가 엄청 많이 바뀌거든요. 1년 정도 남았으니 그동안 덜 자란 뇌에 자극을 많이 주면 몰라보게 좋아질 겁니다. 우선은 애착 대상자를 정하세요. 그리고 감정 교류에 도움이 되는 놀이를 많이 해주세요. 영상 보여주는 건 되도록 끊으시고요. 퇴근 후에 책을 읽어주신다고 했는데, 두 돌 이전의 아이에겐 책읽기가 그다지 좋은 자극을 주지 않습니다. 이 시기엔 ‘도리도리’, ‘잼잼’ 같이 상호작용하는 놀이를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돼요. 소원이는 두 돌 전에 그런 활동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부터 1년 동안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몸을 써서 열심히 놀아주세요.

방) 아이가 투정을 부릴 때는 어떻게 훈육해야 할까요?

신) 당분간은 아이가 짜증 내도 받아주세요. 소원이는 아직 훈육할 때가 아니에요. 애착 불안 때문에 뇌 발달에 지연이 생기면서 불거지는 문제일 수 있거든요. 뇌에 자극을 줘 비언어적 소통을 늘리면 짜증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방) 명심하겠습니다.

신) 마지막으로 꼭 병원에 가서 아이 뇌 발달 정도를 체크해 보세요. 그리고 만약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면 언어 치료가 아닌 놀이 심리 치료부터 해야 합니다.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하고 사회성을 발달시키면 언어는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 얘기 꼭 기억하세요. 애착 관계는 아이 뇌 발달에 가장 좋은 비타민입니다.

신의진 교수의 총평 및 솔루션
①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뇌 발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합니다. 세 돌 전까지 주 양육자 한두 명과 안정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② 아이가 순하다고요? 순한 건 좋은 게 아닙니다. 아이는 원래 계속해서 뭔가를 요구하며 귀찮게 구는 존재입니다. 의사소통하려는 의지가 약한 건 아닌지 의심해보세요.
③ 두 돌 이전의 아이에게 책 읽기는 그다지 좋은 자극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엔 아이 눈높이에 맞게, 몸으로 놀아주는 게 뇌 발달에 훨씬 도움이 돼요.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