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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돼지 삼형제 잡아 먹으려던 늑대가 누명을 쓴 거라고?

중앙일보

입력 2022.05.13 06:00

업데이트 2022.05.13 16:52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byun.sora@joongang.co.kr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byun.sora@joongang.co.kr

“신데렐라는 정말 행복했을까?” “늑대는 정말 나쁜 동물일까?”

동화 읽으면서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으신가요?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처음 본 남자랑 춤 한 번 춰보고 한 결혼이 정말 행복했을까, 늑대가 친구가 되고 싶어서 돼지를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요. 그런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작가가 있더군요. 옛 이야기를 비틀어 새로운 관점에서 재구성하기로 유명한 미국 작가 존 셰이카입니다. 존 셰이카의 패러디 동화는 같은 이야기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매력이 있는데요,『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모르는 사람 없는 국민 동화『아기 돼지 삼 형제』를 늑대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이야기입니다.

너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야  

주인공 늑대 알렉산더 울프 (이하 알)는  이렇게 말합니다. 알에 따르면 진짜 얘기는 이렇습니다. 알은 할머니의 생신 케이크를 만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설탕이 똑 떨어집니다. 알은 설탕을 빌리러 ‘이웃집’ 아기 돼지들을 찾아가죠. 그런데 하필 그때 재채기가 나옵니다. 하필 지푸라기 집과 나뭇가지 집 앞에서요. 허술하게 지어진 집은 힘없이 무너지고, 두 돼지는 잔해에 깔려 목숨을 잃죠.

설탕을 빌리기 위해 아기 돼지 삼형제 집으로 향하는 늑대. [보림출판사]

설탕을 빌리기 위해 아기 돼지 삼형제 집으로 향하는 늑대. [보림출판사]

알은 숨진 돼지 형제를 먹어 치웁니다. 그리고는 아주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육식 동물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라고요. 고기를 먹고 사는 짐승 입장에서 ‘먹음직스러운 햄’을 지나치는 건 직무유기라는 겁니다. 돼지를 먹은 건 절대 “잘못이 아니야” 라고요.

여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설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알은 세 번째 돼지의 벽돌집을 찾았다가 변을 당합니다. 마지막 돼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거든요. 이 돼지는 설탕을 빌려달라는 알을 향해 “흥! 너희 할머니, 다리나 부러져라!”라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이 대목에서 알은 평정심을 잃습니다. 아무리 버릇이 없어도 가족은 건드리면 안된다는 겁니다. 화가 난 알은 벽돌집 돼지를 잡겠다며 난동을 부리고, 결국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철창에 갇힙니다. 이 사건으로 알은 '커다랗고 고약한 늑대'라는 불명예를 안습니다.

책에서 늑대는 아기 돼지 삼형제의 집을 무너트린 이유가 의도치 않게 나온 '재채기' 때문이었다고 해명한다. [보림출판사]

책에서 늑대는 아기 돼지 삼형제의 집을 무너트린 이유가 의도치 않게 나온 '재채기' 때문이었다고 해명한다. [보림출판사]

알은 “누명을 썼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평소 꽤 ‘침착’한 편인데, 벽돌집 돼지가 선 넘은 발언을 해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또 기자들은 왜 ‘재채기’가 아닌 ‘코를 벌름거리며 숨을 들이마신’ 행위에만 주목하냐고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알의 항변은 여기까지입니다. 책을 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늑대는 최선을 다해 항변했는데, 왜 ‘범죄자의 궤변’으로 들리는 걸까. 이 책을 6학년 조카에게 읽혀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 늑대 사악하네.” 이유를 물어보니 그림을 가리킵니다.

햄버거 사이사이 생쥐 꼬리, 토끼의 귀, 돼지의 발이 보인다. 육식동물인 자신은 연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게 본능이라는 늑대의 말은 항변일까? 궤변일까? [보림출판사]

햄버거 사이사이 생쥐 꼬리, 토끼의 귀, 돼지의 발이 보인다. 육식동물인 자신은 연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게 본능이라는 늑대의 말은 항변일까? 궤변일까? [보림출판사]

다시 들여다보니 알의 행실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가 그림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알이 평소 먹는다는 햄버거가 대표적입니다. 햄버거 빵과 치즈 사이 생쥐 꼬리, 토끼의 귀, 돼지의 발이 보입니다. 그리고 보니 알을 만난 아기 돼지들의 태도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지푸라기 집 돼지는 집에 있으면서도 없는 척 숨어있었고, 나뭇가지 집 돼지와 벽돌집 돼지는 “꺼져 버려”라며 까칠하게 굴었죠. 벽돌집 돼지는 “다시는 날 괴롭히지 마”라고 까지 했습니다. 평소 알이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어떻게 대했는데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면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고 하는 거겠죠.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물론 늑대에 대한 편견을 깨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되겠죠. 객관적 증거를 찾고, 조각을 꿰맞추어 진짜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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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흥미로운 건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단서들을 글과 그림 곳곳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이 정말 누명을 쓴 건지, 아니면 범죄자의 궤변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이야기를 조목조목 따져보고,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무리 그래도 연약한 돼지라도 잡아먹어서는 안 돼”라는 선입견을 심어주진 마세요. 늑대의 궤변에 속지 않고 아이 스스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늑대가 정말 누명을 쓴 건지 아이 스스로 생각해보게 해주세요. 그게 이 그림책을 읽는 묘미니까요.

마지막 늑대의 질문은 동화책 내용에 대한아이들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게한다. [보림출판사]

마지막 늑대의 질문은 동화책 내용에 대한아이들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게한다. [보림출판사]

알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깁니다.

“너희는 나한테 설탕 한 컵 쯤은 꾸어 줄 수 있겠지?”

저희 조카는 “웃기시네”라며 책을 덮었는데요. 아이들은 늑대의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추신. 늑대의 주장을 굵게 표시해두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키워드를 연결해보며, 늑대의 주장에 오류는 없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 한 줄 평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는 배워야 한다. 하지만 궤변에 진실이 묻혀서는 안된다.
· 함께 읽으면 좋을 패러디 동화책
『세상에서 가장 심술궂은 아이가 될 수 있다면』우리가 알던 '신데렐라'가 원래 게으르고 심술 궂은 아이였다면? 동화 속 공주는 언제나 아름답고 착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을 때 아이와 함께 읽어보자.
『슈퍼거북』,『슈퍼토끼』달리기 경주를 한『토끼와 거북』의 뒷 이야기. 경주에서 진 충격으로 달리기를 그만 둔 토끼와 남들의 기대에 충족하기 위해 달리려는 거북이. 토끼와 거북은 ‘나 다움’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 추천 연령 상대의 입장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초등 1~2년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 원작 동화를 먼저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원작과 패러디 간의 차이를 찾아보고, 같은 상황이라도 입장에 따라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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