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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의 문화계(89) 조용만
대체로 이 패들은 술만 억병으로 마셨지 여자에게는 별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횡보, 빙허 현진건. 월하 박종화, 수주 변영노, 안서 김억, 양백화 같은 사람들은 떠들고 술만 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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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8) 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71)
그때 춘원은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문단의 좌우싸움에 초연하게 『서종애사』『이순신』같은 역사소설만 쓰고 있었다. 김동인은 평양에서 가끔 서울에 올라왔지만 좌우파 논쟁에 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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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60)
신문사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아침 열시쯤 나가 열한시에 공장에 내려가 판을 짜고 대장을 편집국장한테 보여 OK를 받으면 그날 신문 일은 끝난다. 그런데 공장사람이 말을 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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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3)|제58화 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밀사-40년대 「문장」지 주변 (42)|맥고모자 유죄|정비석
김동인 (금동)이 학예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어느날 새 사주인 방응모 사장이 편집국 순시를 왔었다. 새로 취임한 사장이 편집국에 나타났으니 국장 이하 전 사원이 모두 일어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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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비사 40년대 「문장」지 주변|부인의 가출|정비석(제자 정비석)
분가한지 10년째 되는 1926년에 이르러 재산보다도 빚이 더 많아지게 되자, 김동인(금동)은 자기 손으로 가산을 다시 일으켜 볼 생각에서, 보통강 벌 수리개간사업에 착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