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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안본부장에 유흥수씨 임명

    정부는·치안본부장에 유흥수 서울시경국장(사진)을 승진 발령했다. ◇유 치안본부장 ▲경남합천출신(43세)▲서울대법대▲고시행정과▲부산시경수사과장▲치안본부 교통·보안과장▲부산시경국장▲치

    중앙일보

    1980.09.09 00:00

  • 서울시경국장 박종관씨 임명

    정부는 또 서울시경국장에 박종관 치안본부 제3부장 (사진)을 임명했다. ◇박 서울시경국장 ▲충남홍성출신 (54세) ▲국학대▲52년 순경▲71년 경무관▲충북·충남·경북도경국장▲부산시

    중앙일보

    1980.09.09 00:00

  • 치안 본부장에 염보현씨 임명

    정부는 28일 치안 본부장에 염보현 서울 시경 국장(사진(우))을 승진 발령했다. 또 서울 시경 국장에는 유흥수 치안 본부 제3부장(사진(좌))을, 치안 본부 제3부장엔 박종관 치

    중앙일보

    1980.05.28 00:00

  • 항일로 옥고 치러…5선 의원|「9대」후 외로운 대정부 투쟁

    전북 옥구에서 출생한 양 총재는 서울 중동고보 재학중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돼 중국북경으로 망명해 북경 민봉고교를 졸업했다. 졸업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한 그는 밀명을 띠고 일본으

    중앙일보

    1980.04.01 00:00

  • 김재규등 피고인 8명에 대한 대통령시해사건 공소장 전문

    피고인 김재규는 본적지에서 김형철의 장남으로 출생, 안동농림증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국 특별 간부후보생으로 일본군에 종군하다가 8·15해방으로 귀국, 선산국민학교등 교사직을 거쳐 육군

    중앙일보

    1979.12.04 00:00

  • 정부「산업체·농촌의 외부세력 침투실태」발표|외부세력 최통원인|일부 기업인의 책임의식 부족|실정에 안 맞는 영농시책 때문

    정부는 14일「산업체 및 농촌사회에 대한 외부세력침투실태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 조사보고서에서▲일부 소수의 도시상업선교회 소속 목사들이 산업선교를 한다는 명목아래 근로자들

    중앙일보

    1979.09.14 00:00

  • 「인터폴」…한국경찰에 큰 도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제5차 「아시아」지역회의가 4일 하오 나흘간의 토의를 마치고 폐막됐다. 그 동안 「호텔 신라」에서 열려 토의된 주요의제는 ▲불법마약거래 ▲조직폭력범·강력범

    중앙일보

    1979.08.04 00:00

  • 인터폴총회 의장에 유흥수 치안감 선임

    제5차 국제형사경찰기구 「아시아」지역총회는 1일 주 의제 토의에 앞서 이번 총회의장에 우리나라 수석대표인 치안본부 제3부장 유흥수 치안감, 부의장엔 「필리핀」 수석대표 「부가렌」

    중앙일보

    1979.08.02 00:00

  • 검찰간부21명이동

    정부는 이종원법무부차관을 대구고검장으로 전보하고 후임에 이용훈변호사를 기용하는 등 검찰수뇌급21명에 대한 인사이동을 19일자로 단행했다. 김성재서울고검장, 김윤재서울지검장 등 6명

    중앙일보

    1979.02.15 00:00

  • 부장휴가, 긴장 풀어

    김병우 치안본부 제3부장이 3년 전 검찰(대구지검 차장검사)에서 경찰로 옮긴 후 모처럼 지난주에 휴가를 떠나자 3부 산하 간부 경찰관들은『오랜만에 긴장감에서 풀려났다』고 한마디씩.

    중앙일보

    1978.08.08 00:00

  • "도둑 없는 내 고장 만들자"|전국에 도범 일제 소탕령 &7지역별 검거실적 평가|동·통·반서도 신고접수…자수하면 불구속

    치안본부는 18일 전국경찰에 도둑일제 소탕령을 내리고 20일부터 야간주거 침입절도·치기배·강물사범을 비롯한 각종 도범지역 대한 대대저인 소탕작업을 무기한으로 펴는 한편「도둑 없는

    중앙일보

    1976.03.18 00:00

  • 치안3부장에 김병만씨

    정부는 이와 함께 이승택 제주지사. 치안본부 제2부장 이건개 치안감, 제3부장 김봉균 치안감, 경찰대학장 최정항 치안감을 각각 의원 면직하고 치안본부 제3부장에 김병만 대구지검 차

    중앙일보

    1976.01.12 00:00

  • 전국학련-나의학생운동 이철승

    10·1폭동의 여파는 삽시간에 번져갔다. 그땐 마침 호열자가 만연되고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천하던 때라 공산만행은 더욱 기세를 폈다. 대구 영천 군위 왜관 성주선산 경주 의성등의

    중앙일보

    1975.10.14 00:00

  • 남기고싶은 이야기들(1461)|전국학련-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누군가 해방후의 대구를 남한의「모스크바」라 했다. 대구는 해방후 좌우의 격돌이 가장 심했던 곳. 남한유격대 총사령관 남도부(본명 하일수)가 운문산에 진을 치고 태백산맥을 통한 월북

    중앙일보

    1975.10.13 00:00

  • 그 때 그 사람들|「5·16」 당시와 오늘의 위치

    혁명의 횃불을 든 지 벌써 5년-이 대열에 가담했던 5·16의 주체들의 그 날 포부와 오늘의 현실을 비교해본다. 공화당 사무총장 길재호 씨는 『국민소득이 백「퍼센트」로 늘었다는 등

    중앙일보

    1966.05.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