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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학련(2)
갈길이 바쁜 나는 아내를 전남벌교친척집으로 보냈다. 그때만 해도 벌교쯤은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대구에 온 나는 동성로 2가 동인치과에 학련 임시본부를 만들고 동지규합에 나섰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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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련해체(2)
49년11월21일 서울 시천교당은 격렬한 노성이 장내를 휩쓸었다. 『안됩니다. 이 나라를 건국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공헌했는데 누가 감히 학련을 해산하란 말입니까.』 경북 학련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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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5)|전국학련(87)|나의 학생운동-이철승
47년 6월 전남 광주에서는 또 하나의 학련맹원 김모군(당시 서중생)이 좌익 「테러」에 숨졌다. 좌익의 말로는 광주가 특히 심해 47년 6월 전남 민애청 좌익학생들은 북한에 보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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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연-나의 학생운동 이철승|남기고싶은 이야기들(1440)
46년2월20일께 학연본부에 한 장의 긴급전보가 날아왔다. 발신인은 광주 장충직, 내용은 반탁학련 광주연맹을 결성코자하니 본부지원을 요망한다고했다. 학연본부를 결성한지도 얼마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