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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청·일 각축 속에 좌절된 조선인에 의한 개혁
━ 견지동 우정국 청사와 갑신정변 김정탁 노장사상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큰 한옥이 보인다. 조선말 우정총국 청사인데 개관식 날 갑신정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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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모욕하던 20대, 중국서 ‘배신의 아이콘’ 되다
1883년 9월16일 총판조선상무위원(總辦朝鮮商務委員)으로 조선에 파견돼 한성에 상무위원공서(총영사관에 해당)를 설치했던 청나라 관원 진수당(陳樹棠)은 1885년 9월23일 귀국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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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家 를 찾아서] 천안 목천읍 동리 이동녕家
지난 2월 천안 목천읍 동리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앞에 ‘이동녕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선생의 손자 이석희 전 대우그룹부회장(왼쪽)과 증손자 이용순씨가 기념관을 둘러보며 담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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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신)안동김씨
신안동김씨는 조선조말의 그 유명한 세도가문이다. 계통을 전혀 달리하는 구안동김씨가 있지만 안동김씨 하면 흔히 이 신안동김씨를 생각하는 것은 신라 경순왕의 후예인 구안동김씨(일명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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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 행적기(끝)
1884년 12월, 구주 「나가사끼」에 망명의 첫발을 디딘 후 거의 2년 간격으로 「도오꾜」주변, 소립원·북해도 등을 유랑해 온 김옥균은 북해도 유배에서 풀려 다시「도오꾜」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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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제2장 일본 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제 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행적기(13)
일본에 분명히 남아있을 김옥균의 유족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던 중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다. 조선의 망명정치인 김씨의 손자를 알고있는 일본여인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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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행적 기(11)|제2장 일본 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
소준 취재를 서둘러 끝낸 후 역으로 달려갔다. 김옥균의 다음 행적 지를 찾아「하꼬다데」본선의「아사히가와」행 특급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욱천은 북해도 한복판에 자리잡은 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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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제9화 고균 김옥균의 풍랑행적기
김옥균 관계 자료의 보고 수영 문고는 한국병합 전후한 시기에 한국 정치가와 문인 등이 빈번히 일본을 내왕했던 자취를 남기고 있다. 수영 문고의 소재지 좌야시의 수영가가 이렇듯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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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제2장 일본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행적기
김옥균의 행적과 견주어 그를 「친일파」로 규정짓는 사람도 꽤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평가는 첫째 김옥균이 외세, 즉 일본의 세력을 배경으로 「쿠데타」를 지원했다는 점, 둘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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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 행적기(3)
김옥균이 첫발을 디딘 곳은 일본 땅 구주의「나가사끼」. 이후 10여년간 도합 네 차례(망명포함)에 걸쳤던 일본체류기간 중에 그의 발길은 일본 전토를 거의 빠짐없이 누볐다.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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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 행적기(2)
태어나자마자 김옥균이 지어준 이름을 지금까지 자랑스레 간직하고 있는 일본인이 있다. 대한제국의 망명정치인 김옥균이 일본 체재 중에 보여준 놀라운 글씨 솜씨는 당시의 일본인들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