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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항일연군의 최후|이명영(성대교수 정치학)
항일연군 제1노군에 대한 섬멸작전인 동남삼성치안 숙정 공작은 그때까지의 일만 군경의「토벌」작전 중에서는 가장 본격적이고도 대규모의 작전이었다. l939년10월에 총공격이 시작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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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사장 김일성의 죽음(하)|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항일연군 6사장 김일성의 죽음은 그 시체를 검증했던 만군장교 팔목춘웅씨의 증언과 만군기관지『철심』의 기록으로 확인됐다. 제6사장 김일성의 죽음은 근의 대를 이은 또 하나의 김일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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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제자=김홍일-6사장 김일성의 죽음
보천보 습격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항일연군 제6사장 김일성이 북한의 김성주와는 딴사람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혜산사건의 취조 책임자였던 시원경부의 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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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6사장 김일성에 관한 소문들|이명영 집필 (성대 교수 정치학)
제6사 (사장 김일성) 부대의 보천보 습격은 제6사가 장백현 일대와 국경 지대의 국내에서 벌인 물자 조달 작전 (강탈 사건) 치고는 제일 규모가 컸던 사건이다. 또 그것은 만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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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보천보 사건|이명영 집필 (성대 교수 정치학)
1937년6월4일 밤 10시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장 김일성 (당시 36세·함남 출신·「모스크바」 공산 대학을 나온 후 적군에 있다가 만주의 항일 연군에 파견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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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항일 연군과 소련|이명영 집필(성대 교수 정치학)
동북항일연군의 행군대형은 언제나 일렬종대였다. 눈 내린 겨울 같은 때는 모두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밟아 꼭 한사람이 왔다간 것 같이 위장했다. 뿐만 아니라 맨 뒷사람은 일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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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공비」로 불린 항일 연군|이명영 집필(성대 교수 정치학)
항일연군의 보급이 어떻게 이루어졌던가를 살펴보면 그 부대의 본질과 그 사람들의 본색을 알 수 있다. 일·만 군경의 거듭된 공격 때문에 평지에는 밭을 붙이지 못하고 험준한 산 속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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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제3장 동북인민혁명군 중공 당 유격대 속의 한인|이명영 집필
1938년 가을, 조선혁명군의 마지막으로 남은 대원들이 합류했던 동북항일연군은 중공 당 만주성위 예하 중한공산주의자들의 무장세력으로서 소련의 절대적인 인적·물적 지원덕택에 반만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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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장-5인의 「김일성」|이명영 집필 성균관대교수·정치학
한사람이 아닌 김일성-. 우리들에게 전설적으로 전해오던 김일성이 실존했었고, 그 이름을 도용하는 김일성이 있다. 그래서 이 글에「진위」와「열전」을 붙인다. 실존의 김일성도 한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