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둘째 주 <19호>


조용수의 코드클리어(39) 2020.02.10
"올 것이 왔구나" 전남대 병원서 첫 확진자 나왔던 그날

중국 우한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 환자가 속출했다. 1월 초였다. 이때만 해도 이것이 메르스에 이은 또 하나의 해외 신종감염병일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환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었지만 남의 나라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과거 신종감염병에 두 번이나 크게 데었음에도 여전히 나는 안일했다.

메르스 때 호된 예방접종을 한 덕택에 응급실은 감염 대비 시스템을 제법 잘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1월 초부터 프로토콜을 확인하는 등 병원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여전히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다. ‘설마 내가?’ 하는 생각에 긴장하지 못한다. 눈앞에 재난이 닥치기 전까지는. 이럴 때 믿을 건 정형화된 시스템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나라는 5년 전 메르스 때 비싼 값을 지불했다.

1월 중순이 지나가면서 낌새가 심상치 않아졌다. 중국에서는 천만 명의 사람이 사는 우한시가 통째로 봉쇄됐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첫 환자가 발생 소식이 전해졌다. 더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서둘러 외부에 텐트를 치고 선별진료소를 꾸렸다. 혹시 모를 환자가 응급실 안으로 들어오는 일만큼은 막아야 했다.

명절 연휴가 되었다. 응급실은 지옥이었다. 수백 명의 환자가 몰려들었는데, 거기에 외부 선별진료소를 찾은 감염 의심 환자들까지 더해졌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그래서 우리 중 누군가는 보호구를 입고 종일 외부 환자를 봐야 했고, 그가 빠진 자리는 남은 이들이 나눠 맡아야 했다. 근무 시간이 끝날쯤엔 하나같이 나가떨어졌다. 서 있을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정신력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확진 검사는 그림의 떡이었다. 대학병원도 검사가 불가능했다. 보건소나 1339에 의뢰해야 했다. 거기서도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검사 수는 제한된 모양이었다. 확진 검사에는 아주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었다. 우한을 다녀왔고 X레이에 폐렴이 있는 환자만 고려 대상이 되었다. 우한이 아닌 다른 지역 환자는 집으로 돌려 보내졌다. X레이에 폐렴이 없는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확진 검사 없이 저 두 가지만 가지고는 병을 놓칠 위험이 꽤 컸다. ‘정말 이걸로 충분할까?’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뾰족한 수도 없었다.

명절에 조그만 소란이 일었다. 2차 병원에서 신종감염병이 우려된다며 폐렴 환자를 보내왔다. 폐렴 양상이 일반적이지 않아 신종감염병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태국 공항에서 환자와 접촉했다는 점도 미심쩍었다. 환자를 응급실로 들이지 않고 즉시 음압실로 격리했다. 하지만 환자가 중국이 아닌 태국을 다녀왔기에 보건소는 확진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격리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끝까지 그를 응급실로 들이지 않았다. 천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한 순간이었으니까. 이 환자는 나중에 16번째 확진자로 밝혀졌다.

보건소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폐렴 환자를 전부 검사할 자원은 없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준을 중국으로 한정했다. 프로토콜을 성실히 따른 직원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현장에서 직접 환자를 본 의료진의 감을 수화기 너머로 전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늘 갈등이 발생하는 연유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이것이라 생각한다. 현장 의사의 목소리를 전달할 통로가 있었다면, 어쩌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후약방문이지만.

명절이 지나면서 확진자가 속출했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 우려가 커졌다. 각종 모임이 모두 취소되었다. 병원은 대책 수위를 전보다 훨씬 강화했다. 매일 한차례 이상 회의가 열렸고, 비상사태를 논의했다. 출입구 통제와 함께 방문객을 엄격히 제한했다. 병원 내부로 환자가 아닌 일반인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내원객 모두에게 마스크와 손 씻기를 강요했다.

2월 4일 격리 중인 환자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진됐다.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온통 병원이 술렁였다. 다들 침통한 표정이었다. 찌푸린 인상을 쉽게 펴지 못했다. 메르스도 비껴갔던 곳이건만, 이번엔 행운의 여신이 웃어주지 않았다. 이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찾아올 혼란 때문인지, 하나같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주위 공기가 몹시 무거워졌다.

이날을 기점으로 병원은 총력전에 들어갔다. 대량환자 발생을 상정했다. 간이 음압실을 추가로 설치하고 선별진료소 기능을 강화했다.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어 격리하는 것, 그리고 그 환자가 절대로 응급실 및 병원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최종 목표였다. 정부 지침도 한결 강화됐다. 검사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확진 검사 도구도 병원에 들어왔다. 싸움은 바야흐로 2막에 접어들었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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