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ZZLETTER]
퍼즐레터 18호 ㅣ 2022.11.29

어느덧 올해도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새삼 올해 초 다이어리에 써 놓은 올해의 결심 목록을 살펴보게 되는데요. 늘 빠지지 않은 영어 공부라는 대목이 유난히 눈에 들어옵니다. 누군가는 한국인에게 영어란 평생 다 못한 숙제와 같다고 했다죠. 아마 내년 다이어리 첫 장에 쓸 올해의 결심 목록에도 빠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매년 같은 결심을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이지만 앞으로 나아갈테고, 언젠가는 해외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딱히 쓸 일도 없는데”...마흔 넘어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

by 최창연 그림작가·물리치료사

말레이시아의 카메룬 하이랜드는 넓고 푸른 차밭 사이로 군데군데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는 관광지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고원지대라 날씨가 시원해 현지인들이 자주 여행을 오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을 여행 일정에 넣은 까닭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밤마다 캠프파이어를 하기 때문에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곳이라는 가이드북의 설명 때문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카메룬 하이랜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동양인은 나와 내 친구밖에 없었다. 밤이 되니 정말로 캠프파이어가 열렸는데, 가이드북과 다른 점은 술에 취한 외국인들이 굉장히 영어를 빠르게 말했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그 대화에 거의 끼어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심해진 우리는 일찍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창밖으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속이 상했고, 나는 그곳에 머무는 내내 감기로 고생했다.

딱히 쓸 일이 없는 영어를 왜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다. 15년도 넘은 일인데, 여전히 그 서러움이 생생하다. 어디 그때뿐일까. 출입국 심사대에서의 긴장감, 성희롱하는 가이드에게 한마디 못하고 눈을 피했을 때의 슬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남들 따라 웃을 때의 씁쓸함. 시킨 메뉴가 잘못 나왔는데 그냥 먹을 때의 기분. 웬만하면 오케이를 해버린 순간들이 내 안 어딘가에 고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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