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서비스 구독자 여러분. 매주 월, 수요일 아침 뉴스 내비게이션 레터 서비스를 통해 주요 시사 현안을 정리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만금 의 미래를 조명했습니다.


서울의 3분의 2 새만금 … 기회의 땅에서 애물단지로 

새만금 간척지의 역사는 깁니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7년에 처음 계획이 섰고,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에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방조제는 완성이 됐으나 아직도 매립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40년이 다 되어 가는 대역사입니다.

새만금의 ‘만금’은 김제 평야의 한자어 ‘금’과 만경 평야의 ‘만’자에서 왔습니다. 한자로는 ‘萬金’이니 풍요를 의미합니다. 곡창지대인 두 평야만큼이나 풍성하게 먹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실린 이름입니다. 바다를 메워 서울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땅을 만드는 계획에 걸맞게 거룩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2006년 4월 방조제의 물막이 공사가 끝나는 날 초청을 받아 현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건설의 기술력으로 방조제의 윤곽이 완성됐습니다. 트럭이 큰 바위들을 연신 바다에 퍼부어 서해의 안쪽(동진강과 만경강의 하구)이 호수가 됐습니다. 현대건설은 물막이 공사 구간에 배를 띄워 바다 물살의 흐름을 약하게 만들면서 바위를 쏟아 넣었습니다. 이로써 33.9㎞의 세계 최장(기네스 기록) 인공 방조제가 생겼습니다. 방조제가 완전히 완성된 것은 2010년이었습니다.

처음 계획 때 새만금 간척지의 용도는 농경지였습니다. 식량 자급을 위한 것이었죠. 1980년대 초 현대건설은 서산 간척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정주영 당시 회장이 폐유조선을 이용해 물막이 공사를 하는 획기적 공법을 창안했습니다. 국토를 넓히는 획기적 사업이 성공을 하고 기술력까지 갖췄으니 새만금 간척지 개발이라는 원대한 계획이 수립됐습니다.

그런데 방조제 완성까지 19년이나 걸렸습니다. 바다로 나가야 할 강물이 갇혀 큰 호수를 이루게 됐으니 당연히 환경 문제가 대두했습니다. 어업을 생업으로 삼던 인근 주민들의 반발도 거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방조제가 완성되고 땅을 매립만 하면 간척지 사업이 끝나게 되었는데, 문제는 용도였습니다. 그 사이에 농경지 확대에 대한 절박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곡물 생산 필요성이 확 줄어든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