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모르는 조카가 집 받았다…60대 금융맨 ‘외로운 유서’

  • 카드 발행 일시2024.04.23

형님이 찾아오신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리세요. 하지만, 형님네를 일부러 찾지는 말아 주세요.

60대 남자의 유서였다.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살던 남자.
거의 정년 때까지 직장도 다녔다.
대단할 건 없어도 주식 관련 회사에서 일했다고.

집안 곳곳엔 영어 공부 관련 책들이 빼곡했고,
취미로 읽는 책들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백 권이었다.
그냥 꽂아 놓은 책이 아니었다.
책 곳곳에 표시를 해뒀고 독서 메모도 남겼다.

옮겨 쓰고 생각 적고,
오래도록 공부한 흔적이 가득한 노트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의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걸까.

경찰이 시신을 인계할 가족을 일부러 찾지 않을 수는 없기에,
어쨌든 연락이 갔고 ‘형님네’의 조카가 혼자 찾아왔다.
20대 후반의 청년은 삼촌의 존재만 어렴풋이 들었을 뿐,
살면서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조카는 고인이 된 삼촌을 ‘그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사람이 홀로 숨진 집은
그가 20년 전 월세로 들어와 전세를 거쳐 매입한 단촐한 빌라였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리세요.

고인의 유언.
어쨌든 그 집 한 채는 얼굴 모르는 조카에게 남겼다.

그 집 외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이란 뭐였을까.
통장 잔고나 그런 것까지야 당연히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조카로부터 유품정리 의뢰를 받은 그 집을 보니,
고인이 ‘남긴 것’이 너무 많았다.

집안은 눈이 아플 정도로 온통 화려한 색상이었다.
형형색색의 종이가 차곡차곡 정성스럽게도 접혀 있었고,
가구며 가전이며 모든 것을 그 종이들이 포장하듯 감싸고 있었다.
동화, 아니 잔혹동화 속 ‘색종이의 집’ 같았다.

강박장애.
어떤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떨쳐내지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반복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고인의 경우는 ‘포장강박장애’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