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역사 바꾼 ‘환승연애’…최고의 디바가 사라졌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12

 ‘드라마’.
 한 시대를 풍미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삶은 이 한 단어로 요약됩니다. 그의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주엔 오페라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를 만나보겠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황수미와 함께 칼라스의 드라마, 칼라스의 소리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1954년 오페라 '베스타의 무녀'에 출연했던 마리아 칼라스. 사진 홈페이지

1954년 오페라 '베스타의 무녀'에 출연했던 마리아 칼라스. 사진 홈페이지

 1959년 8월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높이 5층, 길이 100m의 축구장만 한 요트가 준비됐습니다. 시가 300만 달러 짜리 초호화 요트입니다. 황금과 대리석으로 치장한 욕실과 서재·수영장에 공연장 겸 라운지까지 갖췄죠. 명화와 불상, 그리스 골동품, 그랜드 피아노도 놓여 있습니다. 승무원만 60명인 이 배가 3주간의 크루즈를 시작합니다.

이 항해는 엉뚱하게도 오페라의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배에 탔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때문입니다. 당시 35세였던 칼라스는 ‘바다 위의 궁전’에서 소녀처럼 좋아하며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배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 정박했을 때 배의 주인과 함께 내려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오게 되죠. 배에는 크루즈에 함께 나섰던 남편이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읽을 수 있습니다

🔹설득되는 거친 목소리
🔹당대 라이벌과의 비교
🔹노래로 보여주는 죽음
🔹그의 삶과 닮은 노래

➕부록
-뉴욕타임스가 뽑은 ‘칼라스의 명곡’
-20세기의 환승남, 오나시스에 대해

이제 전 세계 오페라 팬에게 암흑기가 시작됩니다. 마리아 칼라스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청중은 공연 며칠 전부터 침낭을 챙겨 들고 길에서 잠을 자며 칼라스를 기다렸죠. 전성기인 1948년부터 52년까지 18개 배역을 맡아 173차례 공연했던 가장 뜨거운 소프라노였습니다. 호화 요트에 승선하기 전인 1958년엔 28차례 오페라 공연을 했죠. 그런데 1960년 7회, 1961년 5회, 1962년에는 단 두 차례만 오페라 무대에 섰습니다. 1965년 42세 때 마지막 두 차례의 오페라에서 노래한 뒤 은퇴했습니다. 그 뜨겁던 오페라 디바가 이 크루즈 여행을 기점으로 서서히 식어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부족할 것 없는 최고의 스타가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요.

이상하게도 칼라스의 삶은 마치 오페라 작품들이 조목조목 예언해둔 것처럼 흘러갔습니다. 칼라스가 출연한 마지막 오페라는 ‘노르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