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자유센터 ‘치솟은 처마’…JP “자유냄새 물씬” 주문했다 (108)

  • 카드 발행 일시2024.04.05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이 100회를 넘어 이제 최종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JP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했던 혁명과 정치, 권력 쟁투를 기록한 뜨거운 장면들에선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그의 인생의 또 다른 면모를 몇 장면 소개합니다. “혁명가와 예술가의 기질은 통한다”는 본인의 자부처럼 JP는 ‘근대화 혁명가’였지만, 시서화에 조예가 깊은 ‘전통적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건축가 김수근과의 인연, 그리고 JP가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국가 상징 건축물·역사화(畵) 프로젝트의 뒷이야기들입니다.

건축물은 한 시대의 정신을 압축적으로 표출하며 훗날엔 역사적 가치로 존재한다. 나는 건축을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건축가의 작품을 통해 5·16혁명의 시대적 지향성을 드러낸 적이 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차산 기슭에 세워진 워커힐 호텔은 나와 인연이 깊다. 5·16 직후 중앙정보부장이던 내가 건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서울엔 마땅한 위락시설이 없어 주한미군 병사들은 휴가 때면 일본으로 건너갔다. 우리 입장에선 재정 측면에서 여간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워커힐은 연간 3만 명 규모의 미군 휴가 장병을 머물게 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외화도 벌고 비상시 소집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워커힐 건설은 첨단 기자재와 신공법이 도입된 한국 건축사에 전례 없는 대역사(大役事)였다. 워커힐은 나와 건축가 김수근(1931~86)의 인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