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높은 구두 안 신었다…‘JP룩’ 만든 JP의 패션 회고 (106)

  • 카드 발행 일시2024.04.01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이 100회를 넘어 이제 최종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JP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했던 혁명과 정치, 권력 쟁투를 기록한 뜨거운 장면들에선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그의 인생의 또 다른 면모를 몇 장면 소개합니다. “혁명가와 예술가의 기질은 통한다”는 본인의 자부처럼 JP는 ‘근대화 혁명가’였지만, 시서화에 조예가 깊은 ‘전통적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문예’뿐 아니라 패션과 건축에도 관심을 쏟았던 JP의 일화들을 소개합니다.

1961년 5·16 직후 혁명정부 기관 중 내가 기획해 설립한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가 있었다. 국민 마음속에 혁명정신과 생활의 과학화를 심어주는 의식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비록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나중에 새마을운동으로 승계) 그 족적을 남긴 것이 있으니 바로 ‘재건복(再建服)’이었다. 장식 없이 검은색 단추가 달린 짙은 회색의 싱글 상의와 하의로 된 실용적인 간소복이다.

옷은 그것을 입은 사람 마음의 형식이 된다. 실질을 중시하는 정신 변혁 운동을 할 때 대중의 뜻을 모으는 틀이 되기도 한다.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착용을 권장한 이 옷은 모든 공무원이 입는 유니폼이 됐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나는 물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도 평상시 양복 대신 재건복을 즐겨 입었다. 재건복은 혁명의 시대 6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이었고 이제는 역사의 유물로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지금도 외출할 때 양복보다는 내가 디자인한 ‘JP표’ 간소복을 입을 때가 많다. 68년 내가 공화당 의장, 국회의원직을 포함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야인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 디자인했으니 어느덧 5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옷이다. 내가 만들고 내가 입은 옷이니 패션세계 용어로 말하자면 ‘JP 룩(look)’인 셈이다.

상의 양쪽 가슴과 허리춤에 모두 4개의 주머니가 달려 있고 등판 가운데 세로로 길게 주름을 잡은 것이 특징이다. 무턱댄 모방이나 흉내가 아니다. 이곳저곳에서 눈여겨봐 둔 옷 모양을 참고해 나 스스로 설계했다. 입기에 편안하면서도 점잖고 단정해 보이도록 하는 데 신경 썼다. 실용성을 우선하면서 세상을 바꾸자는 시대정신을 가미했다. 제작은 내 단골 맞춤양복점인 체스터필드에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