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배 포철만 돌볼 겁니까” 괄괄한 그 전화, 전두환이었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3.28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박태준 회고록’ 디지털 에디션을 시작합니다

중앙일보의 인물 회고록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2004년 8월부터 12월까지 90회에 걸쳐 박태준(1927~2011) 전 포스코 명예회장(32대 국무총리)의 현대사 증언을 연재했습니다. 박 전 회장은 한국의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인 포항제철을 모래밭에서 일궈낸 세계적 ‘철강왕’이었습니다. 생전의 그가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남긴 소중한 육성 기록을 더중앙플러스에서 디지털 에디션으로 새롭게 연재합니다.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연재를 시작하며

내 나이 올해로 77세. 석 달 더 지나면 희수(喜壽)를 맞는다.

3년 전 폐 밑의 3.2㎏짜리 물혹을 떼어 내기도 했지만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 올 연말 우리 부부는 결혼 50주년인 금혼식도 앞두고 있다. 고향인 부산 기장 바닷가에는 어릴 적 집터에 지은 아담한 스틸하우스가 있다. 내게 남은 유일한 집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출과 일몰,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본다. 세상과 한 발짝 물러선 채 이처럼 고즈넉한 때도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행복한 황혼을 보내고 있다.

포스코 회장. 집권여당 대표. 국무총리….
돌아보면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두루 거쳤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란 다섯 대통령과도 길고 짧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상징은 한 단어로 ‘철(鐵)’이다. 철을 만들기 위해 나는 장년기를 모두 바쳤다. 철을 지키기 위해 곡절 많은 정치에도 발을 담갔다. 그리고 상처도 받았다. 1990년 11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때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치사가 떠오른다.

“당신은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언제 어디서나 가장 앞에 서 있었다. 한국전쟁 때는 장교로 투신했고, 국가가 경제 현대화를 요구했을 때 당신은 기업인으로 나라 앞에 섰다. 국가가 미래를 위한 정치인을 필요로 할 때 당신은 또 정치인으로 그 부름에 응했다….”

나는 아직도 청년 장교 시절 나의 혼에 불을 붙였던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붙잡고 있다.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여전히 늙은 나의 혼을 자유로이 풀어주지 않는다. 내가 지난 삶을 되짚어 보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흘러간 경험이나마 조국의 발전에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 기록이 우리 후손이 20세기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2004년 7월 정기검진차 미국에 갔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숲속을 거닐고 있다. 중앙포토

2004년 7월 정기검진차 미국에 갔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숲속을 거닐고 있다. 중앙포토

뒤바뀐 관계

80년 가을. 포항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박 선배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전혀 스스럼없는 괄괄한 목소리. 전두환 국보위 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