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내각제 힘듭니다, 죄송” JP “다음 장으로 넘어갑시다” (98)

  • 카드 발행 일시2024.03.13

정치를 하면서 결단과 선택을 요구받는 대상들은 부분이냐 전체냐, 이상이냐 현실이냐, 당이냐 국가냐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선택은 이 대상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환경을 미리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럴 때 정치인으로 지켜야 할 규범은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실업(實業)하는 사람들은 욕망과 이기심을 바탕으로 선택을 하지만 허업하는 사람은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취해야 한다. 정치의 과실은 정치인 자신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게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이유이고, 국민이 그들을 믿고 따르는 이유다. 나는 DJP공동정부의 국무총리를 2년 가까이 하면서 절벽에 선 듯한 고비에 다다랐을 때마다 부분보다는 전체, 이상보다는 현실, 당보다는 국가를 선택하려 했다.

1999년 7월 21일 김종필 국무총리가 정부중앙청사에서 내각제 개헌 논의를 유보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1999년 7월 21일 김종필 국무총리가 정부중앙청사에서 내각제 개헌 논의를 유보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새 정부는 출발부터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에 발목을 잡혔다. 그들은 내가 공동정부의 총리가 되는 것을 집요하게 반대했다. 1998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날부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총리임명동의안’ 투표에 집단으로 불참하더니 닷새 뒤 표결에선 백지·공개투표 방식으로 나를 압박했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은 퇴장하는 김영삼 정부의 고건 총리를 통해 장관 임명 제청을 받아 내각을 구성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나는 총리가 아닌 ‘총리 서리’ 임명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