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김정일 55분 ‘車 밀담’…내겐 민감한 내용도 밝혔다 (99)

  • 카드 발행 일시2024.03.15

김대중(DJ)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북정책에서 이솝 우화를 빗댄 이른바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풍의 힘이 아닌 태양의 따뜻함’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화해와 포용의 정책과 제스처를 썼다. 1998년 6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방북한 데 이어 쌀·비료·의약품·생필품을 실은 배가 북한을 향해 출항했다.

나는 DJ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였다. 하지만 DJ의 햇볕정책은 여러 부분에서 나의 동의를 구한 적이 없고 또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지켜봐 온 북한의 공산체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변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다. 김영삼 정권 시절인 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일부에선 이북에서 수십만의 피란민이 내려오고 일본으로 갈 거라고 넘겨짚었지만 실제 북한체제는 별로 동요(動搖)하지 않았다. 식량 달라, 비료 달라고 북한이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고 해서 북한 정권의 명운(命運)이 다했다고 생각하는 건 오판이다. 북한 정권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체제 관리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개혁·개방의 포용정책을 내놓으면 북한이 그것을 받아들여 변화하리라는 생각은 장밋빛 환상(幻想)에 가까웠다.

나는 DJP 공동정권의 한 축이었다. 하지만 포용정책에 관한 한 밀어붙이기 기세 때문에 DJ 정권 내부 분위기는 다른 견해와 지적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간간이 충고의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98년 12월 동부전선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나는 포용정책에 대한 견제와 충고의 말을 던졌다.

1998년 12월 9일 동부전선 부대를 방문한 김종필(JP) 국무총리가 관측소에서 망원경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JP는 이 자리에서 “환상을 가지고 통일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많지만 북한은 분명한 우리의 적”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DJ)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추진해 온 대북 햇볕정책을 경계하는 발언이었다. JP는 “DJ의 햇볕정책은 여러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1998년 12월 9일 동부전선 부대를 방문한 김종필(JP) 국무총리가 관측소에서 망원경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JP는 이 자리에서 “환상을 가지고 통일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많지만 북한은 분명한 우리의 적”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DJ)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추진해 온 대북 햇볕정책을 경계하는 발언이었다. JP는 “DJ의 햇볕정책은 여러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